메디케어 고객인 김 권사님이 예전에 쓰시던 플랜을 바꿔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인 교회 식당에서 만났다. 예전에 쓰시던 플랜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교회 회의 중 잠시 나와 사인을 하시기 위해 나오셨다. 곱게 생기신 권사님이 가지고 오신 핸드백이 유난히 예쁘고 특이해 보여 한마디 했다. 그 가방 참 예쁘네요. 정말이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대답하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잠시 후 가지고 온 서류에 사인을 하신 후 다시 물으셨다. 이 핸드백이 정말 좋으냐고 하시길래 그럼요 라고 대답하자 그렇다면 이 백을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황당한 반응이었다. 이건 아닌데…나는 그냥 특이하고 예쁘다는 것이지 갖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해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권사님이 한 두 달 정도 들고 다녔으니 이젠 내가 가져가도 좋다고 하시며 핸드백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 둘씩 꺼내신다. 주변을 기웃거리시더니 교회 식당 언 구석에서 비닐 봉투 하나를 찾아오셔서 주섬 주섬 소지품들을 옮기시는 것이었다. 아이구 말 한마디에 천냥빚을 갚는단 얘기는 들었어도 말 한마디에 이렇게 멋진 핸드백을 얻게 되다니.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내게 권사님은 괜찮다고 미소 지어 보이셨다. 일을 마친 후 파킹랏에 차를 빼서 몰고 오는데 먼발치에서 졸지에 하얀 비닐봉지 달랑 들고 걸어가시는 모습이 보였다. 아 미안하다고 해야하나 고맙다고 해야 하나. 뭔가 엉뚱한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우물쭈물 대다가 잽싸게 그 거리를 빠져나와 프리웨이로 들어갔다. 을씨년스런 가을 주말에 프리웨이를 달려 가는데 온 세상이 따뜻한 봄날 같았다. 사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직업상 한참 바쁜 때이니 미역국은 커녕 아침밥도 먹지 못하고 집을 나섰었다.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위로를 하며 일을 하고 다녔지만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옴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공연히 돌아가신 부모님이 또 떠올랐었다. 어릴적부터 매년 생일 이면 아버지는 한 번도 어김없이 봉투에 돈을 넣어주셨고 힘든 미국 이민 생활에서 까지 이어졌었다. 결혼 후 멀리 떨어져 있을때도 생일 아침엔 으례히 축하전화를 주시곤 했는데.. 이젠 두 딸만 이 애미 생일을 기억하는구먼. 아니다 아버지의 자상함을 이어받은 한국에 오빠가 애틋한 이메일을 보내 왔다. 그러면 됐지 뭐. 애써 위로하며 밝아보려 마음 먹고 나선 오늘 아침이었는데 이런 뜻밖에 멋진 선물을 받게 되다니… 하늘의 선물을 받은 듯하다. 어느 명품백이 이것보다 멋드러 질 수 있을까. 예수님 고맙습니다를 여러 번 외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 꼬옥움켜쥐고 혹시라도 잃어버리면 얼마나 억울해 하는가. 그런데 그 권사님은 그저 보험 에이전트에 불과한 내게 어떻게 그 아끼던 물건을 스스럼없이 건네줄 수 있단 말인가? 그 다음 주, 그 핸드백을 교회에 들고 갔더니 여 집사님들이 한마디씩 한다. 그 핸드백 너무 예쁘다, 특이하다, 어디서 샀느냐는 등 많은 여자들의 찬사를 받으니 내 어깨가 으쓱해진다. 오~ 명품보다 더 아름답다는 어느 집사님의 커멘트에 이건 돈주고 도 못 사는 명품 중에 명품이라 답해 주었다. 사실 내겐 소위 몇 천불을 홋가하는 명품이라 칭하는 브랜드 가방이 없다. 훗날 내가 그런 고가의 백을 산다한들 이것만큼 귀할 수 있을까. 이건 하늘에서 준 사랑의 백인데.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는 요즈음 새로운 해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가 잠시 생각해 본다. 크리스챤이라는 나도 나의 구원을 위해 목숨까지 내 놓으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린다는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나의 샤핑 리스트는 얼마나 이기적이었던가. 나와 상관없는 이들을 위해선 여전히 인색한 나를 본다. 북가주 내 친구는 치과 의사이면서 주말 새벽이면 홈레스를 찾아가 봉사를 하고 돌아와 다시 치과 일을 본다. 그들에게 찬양을 들려주고 원하는 이들에겐 악기까지 가르쳐 주더니 최근엔 그들과 함께 작은 음악회까지 열었었다. 내가 아는 샌버나디노에 C 교회 이 목사님도 홈레스를 돕는 재미에 푹 빠져 버리셨다. 누군가 그들을 위해 작은 성의를 보이면 감사와 기쁨이 넘치신다. 하나라도 자기 이익을 챙겨야 똑똑한 이 세상에서 왜 이들은 멍청이 처럼 살아갈까? 주변을 돌아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니 이 멍청이들이 진짜 행복을 알고 있는것 같다. 새해엔 나도 이런 행복을 맛보고 싶다. 멍청한 친구들 대열에 합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