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청첩장이 날아왔다.
혼주를 보니 가까운 지인이어서 반가운 마음에 결혼식 날짜와 장소를 확인했지만,
그런 내용이 보이지 않았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저희 큰아들이
그곳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리게 되어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결혼식이 미국에서 열리다 보니 하객을 초청할 수가 없어서
아들의 결혼식을 알리는 인사로 대신한다는 내용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유학을 간 지인의 아들은 10년 이상을 미국에 있는데,
한국의 부모는 아들 결혼이 늦어질까봐 나한테도 맞선을 의뢰했었고,
지인들을 통해서도 어울리는 배필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은 박사과정에서 같이 공부하던 미국 여성과 몇 년째 교제를 했고,
외국인 며느리를 원치 않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미국에 가게 된 부모의 심정이 이해는 되지만,
주변에서 이런 일을 종종 봐 왔던 나로서는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은 ‘다음 세대에도 국가의 개념이 지금과 같을까?’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개념짓고 있는 민족, 영토 중심의 국가는 점점 의미가 없어져 가고 있다.
대신 언어를 중심으로 새롭게 재현되고 있다.
지역은 거주지에 지나지 않을 뿐, 사람들을 한 데 묶는 것은 언어인 것이다.
지인 중 한 명은 30년 전에 미국인과 결혼해서 1남1녀를 두었다.
큰아들은 미국에 사는 백인여성과 결혼했고, 둘째인 딸은 대만 남성과 결혼했다.
언어가 통하기 때문에 이런 만남이 가능하다.
이 세상은 의사소통에 거리 개념이 없어진 지 이미 오래다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세계 어디와도 소통할 수 있다.
한국에 있는 부모는 저 먼 남미 대륙에 사는 자녀와 마치 가까이 사는 것처럼 안부를 주고받는다.
남녀관계도 마찬가지다.
인종이나 국가가 어딘지를 따지는 시대는 지났다.
지인 가족의 경우, 어머니는 한국인이지만,
자녀들은 자신이 한국인의 혈통이라는 것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말도 안 통하는 한국보다는 자주 만나고 소통하는 외국인이 더 가까운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전체 혼인의 8.8%가 국제결혼이다.
100쌍 중 8~9쌍은 부부가 서로 다른 국적이다.
다 섞이고, 정체성이 바뀌는 세상이 오고 있다.
혼란스러움이 아니라 그것이 새로운 정체성이다.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이다.
남녀관계의 경우, 소통이 되고 감성과 취향이 서로 맞는다면 외국인이라도 호감을 품는다.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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