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전문직에 종사하는 서른 일곱살 K씨는 피부와 몸매 관리, 취미생활도 열심히 하면서 싱글 라이프를 즐기며 산다. 결혼이 그리 급하지 않은 그녀는 어머니의 간청에 못 이겨 맞선을 보기로 했다. 얼마 전 다섯 살 연상의 사업가를 추천했는데,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나이가 많아서요.”
“나이차가 몇 살 정도여야 하는데요?”
“연하면 좋겠어요. 다섯살 위면 마흔 둘인데, 40대라니요?”
내가 할 말을 생각하는 사이에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맞선 보겠다고 와서 황당한 얘기를 한다고 생각하시죠?”
“그런 것보다는 아직 결혼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요.”
“솔직히 그래요. 부모님은 나이 생각을 하라고 하시는데, 저는 제 나이가 많다고 생각 안 하거든요. 차라리 혼자 살면 살았지, 이렇게 떠밀려서 결혼하고 싶지는 않아요.”
단호하고 당당한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골드미스’다. 자기 자신을 삶의 중심에 놓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한국의 결혼문화를 대표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골드미스’를 선택할 것이다. 골드미스에 담긴 인식의 변화, 다양한 현상, 시대적 상징성은 큰 의미가 있다.
‘골드미스’라는 용어는 ‘하이미스’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1999년 동아일보와 선우가 30대 미혼여성 300명을 분석, 30대 미혼 대졸 커리어우먼을 ‘하이미스’라고 개념화했다. 독립적인 연애관·결혼관, 개성있는 라이프 스타일, 그리고 사회 경력과 경제력을 갖춘 여성들이었다. 지금은 이런 여성들이 일반적이지만, 20년 전만 해도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동떨어진, 그야말로 ‘신인류’였다.
이들로 인해 배우자 선택문화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이전까지는 남편은 직장에 다니고, 아내는 집에서 살림을 하는 구도였다. 하지만 골드미스의 출현으로 결혼 후에도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들이 늘었다.
골드미스의 조건은 20년 새 연봉 2800만원에서 5000만원, 키는 161㎝에서 165㎝로 변했지만 골드미스가 우리 결혼문화에 끼친 영향은 여전히 크다.
긍정적인 측면은 일과 결혼생활에 남녀 구분이 없다는 인식 전환, 그리고 남자가 여자보다 나이, 경제력, 사회적 지위 등이 높아야 한다는 ‘남고여저’의 배우자 선택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저출산, 결혼비용 상승, 이혼 증가 등이다. 골드미스가 이런 현상의 원인제공자라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여성이 사회활동을 하면서 출산과 육아를 병행하기는 어렵고 충분한 가사분담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출산율은 떨어진다.
골드미스의 출현은 이전부터 진행되던 사회변화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다행인 것은 이런 혼란의 시기를 수업료를 적게 치르면서 무난하게 넘어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결혼정보회사의 역할도 컸다. 결혼연령이 높아지면서 급격히 늘어난 골드미스들은 전통적인 중매방식으로는 자신의 이성상을 맞추기가 힘들었고, 그래서 이들 중 일부는 결혼정보회사에 진입해 결혼상대를 찾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