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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나무 찍어 넘어가는 나무 찾아라
sunwoo | 조회 4,219 | 11.26.2019
20세기의 연애방식을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라고 한다면, 21세기에는 ‘열 나무 찍어 넘어가는 나무를 찾아라’로 바뀌었다. 한 사람을 향한 애틋함과 순정이 있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속전속결, 잘 안 될 것 같으면 아예 시작도 안 한다. 미련도 없다.
왜? 버스가 떠나면 또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잊지 못하는 짠한 추억이 있다. 스무살 청년의 마음을 뜨겁게 물들인 여성과의 만남….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제대로 고백도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는 나의 첫사랑이었다.

아침 8시에 출근하는 그녀를 보려고 7시반부터 그 집 앞에서 기다렸다. 그리고는 동대문 지하철역까지 그녀를 따라갔다가 돌아왔다. 그런 날이 몇 달 계속됐다. 그렇게 혼자 좋아하다가 몇 달 뒤 용기를 내어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대문을 열고 나온 그녀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딸, 얼마 전에 결혼했는데….”

말 몇 마디 나눠보지도 못했고, 손도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짝사랑은 끝이 났다. 그날, 쓸쓸히 걷던 그 골목길, 눈물이 맺혀 올려다보던 잿빛 하늘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가 1980년대 중반이었다.

20세기에는 남성의 구애, 여성의 순정, 이런 것이 자연스러웠다. 만남 현장에서도 이성이 마음에 들면 매니저에게 다리를 놓아달라고 적극적으로 청하는 일이 많았다. 여성의 경우, 이성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탈퇴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서로 마음이 안 맞아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상대의 호감을 받지 못해도 ‘내가 싫어? 그럼 할 수 없지’라며 깨끗하게 돌아선다. 예전처럼 좋다고 따라다니는 행동은 스토킹이 된다. 예전에는 이성을 만나는 통로가 제한적이었고, 그래서 만남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만나면 최선을 다했다. 싫다는 상대를 계속 설득해서 인연을 맺는 커플들도 많았다.

요즘 결혼이 늦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만남의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소셜데이팅도 활성화되어 있고, 심지어 구청이나 시청에서도 만남을 주선한다. 그러다 보니 이번 만남이 안 되면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온 마음을 다해 ‘핫’하게 사랑했던 20세기, ‘쿨’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21세기,
그런 연애방식의 온도 차이가 20세기와 21세기를 구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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