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결국 그의 전화번호를 삭제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몇 달 지났지만, 전화번호 검색할 때 가끔 눈을 스치는 그의 번호를 쉽사리 지울 수가 없었다. 늘 사랑을 갈구했고, 그럴수록 더욱 외로웠던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이었기에….
1938년생 그와의 첫 만남은 그가 70대 초반이었던 5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그가 내 앞에 앉았을 때 부모가 자녀 결혼을 의뢰하러 온 줄 알았다. 하지만 조금 쑥스러워하면서도 뭔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자신의 재혼상대를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것이 5번째 재혼이라는 것이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결혼에 대해 질문받고, 수백번씩 결혼을 생각하는 게 직업인 나에게도 그런 경우는 드물었다.
당시 그는 나이에 비해 건강하고, 활력이 넘쳤다. 특히 외모와 스타일이 좋은 편이라 60대로 봐도 무방했다. 몇 년 전 파트너와 헤어졌는데, 혼자 사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그는 유난히도 외로움을 타는 사람 같았다.
재혼 원하던 70대…
한때 재산 50억 이혼 반복하며 재산 축나
그런데 문제는 그가 재산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전세 하나 겨우 얻어서 살 정도였다. 사실 그는 원래부터 무일푼은 아니었다고 한다.
“믿지 않겠지만 내 재산이 50억원이 넘었던 적도 있었어요. 본처와 이혼하면서 10억원을 딱 떼줬어요. 그 사람도 나 만나 고생했고 또 잘 살아야 내 마음도 편하니까. 그리고 사업하다가 여자를 만나 동거를 했는데, 헤어질 때 위자료 달랍디다. 그래서 15억 줬어요. 내가 돈 냄새를 풍기는지, 꽃뱀 같은 사기꾼한테 당해서 10억 정도 털리고, 4번째는 정식 결혼을 했는데 몇 년 살다가 또 5억인가 주고, 그러면서 내 주머니가 점점 비어가더라고. 나도 몰랐지.”
“그럼 결혼은 2번 하시고, 2번 사실혼이신 거네요. 그런데도 또 결혼하고 싶으세요?”
“남들은 내가 여자를 밝혀서 안달이 났다는데, 그렇게 보이는 걸 변명은 안 하지만. 내가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혼자 죽는 거요. 죽을 때 내 옆에 있어줄 여자를 찾아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아. 자식들이야 여자 한번 만날 때마다 재산이 축나니까 난리지. 하지만 내가 내 인생 잘 사는 게 즈그들 짐 덜어주는 건데. 나 늙어 꼬부라지면 지들이 책임질 거야?”
젊은 시절 잘 나갔던 사람인지라 그에게는 여전히 자부심과 당당함이 느껴졌다. 형편이 안 좋아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추구하는 만남이 있고, 이성상이 분명했다.
마침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60대 초반의 경제력 있는 여성으로 큰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본인이 여유가 있다 보니 외모가 괜찮으면서 건강한, 한마디로 남성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을 원했다. 분위기도 있고, 품격 있는 여성이면 좋겠다는 것을 내가 일언지하에 딱 잘라버렸다.
두 번 결혼 두 번 사실혼 그래도 여자 만나 또 결혼하고 싶다?
“지금 선생님은 여성에게 의탁하는 겁니다. 선생님 형편이면 어디서든 중매 안 섭니다. 늙어서 돈 없는 남자 만나서 고생하려는 분이 어딨어요? 선생님 연세면 여성을 부양해야 하는데, 하실 수 없잖아요. 이거 따지고, 저거 따지는 건 너무 욕심이지요.”
그렇게 설득해서 만났는데 두 사람은 이내 불이 붙었고, 얼마 후 동거에 들어갔다. 주변에서는 “다 늙어서 볼썽사납다”고도 했지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고 했고 나 봐서라도 잘 살겠다고 했다. 진심으로 그의 행복을 빌었다.
그랬는데, 몇년 만에 그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 여성과는 몇 년 살다가 헤어졌다고 한다.
“격이 떨어진다고 하나. 여튼 서로 안 맞아요. 돈을 만지고 산 여자라 결국은 돈 얘기더라고요. 남자면 된다고 하더니, 내가 남자 노릇을 잘 못했는지, 그다음엔 말을 바꿔 돈 못 벌어와서 싫대요.”
변하지 않은 건 꼬장꼬장한 목소리와 자존심뿐이었다. 나이에 비해 젊던 외모도 결국은 세월 앞에 손을 들었다. 내 앞에는 늙고 힘없는 70대 후반의 노인이 앉아있을 따름이었다. 혹시나 싶었다.
“선생님.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내가 이 선생한테 바라는 게 뭐겠소? 그 여자랑 헤어지고 한 2년 혼자 살았는데, 사람 할 짓이 못됩디다. 혼자 사는 사람이 제일 독한 것 같아. 어렵겠지만 마지막으로 내 부탁 한 번만 더 들어줘요. 마음 통하는 사람.”
자선사업가가 아니고서야 그를 만나줄 여성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마지막 희망을 갖고 나를 찾아온 그분에게 난 끝내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네.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그것이 내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마 6번째 재혼을 꿈꾸며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으리라.
한 달쯤 지났을까, 안부 인사도 할 겸 전화를 걸었는데, 없는 번호라는 음성 메시지가 들려왔다. 순간 직감했다. 삶의 중요한 주제를 던져놓고 그는 떠났다.
결혼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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