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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진의 만남과 결혼] "용 꼬리보다 닭 머리가 되는 게 어때요"
sunwoo | 조회 4,689 | 05.07.2017



월급이 남자 연봉보다 많은 여자가 결혼한 사연

 
“용 꼬리보다 닭 머리가 되는 게 어때요?”

여자 신랑과 남자 신부가 결혼했다.
지금은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앞으로 익숙해질 유형의 커플을 소개하려고 한다. 여성이 사회활동을 하고, 남성이 살림하는 커플이다.

79년생 여성 A, 잘 나가는 패션 사업가다. 월소득이 5000만원이 넘는다. 거기에 소위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왔고 인상도 평범하다. 지인이 그 어머니와 친분이 있는데 딸이 결혼 걱정은 전혀 안 한다면서 애를 태우기에 “뭐가 아쉬워서? 내가 그렇게 잘났으면 혼자 산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 그녀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갖출 거 갖춘 사람이면 무슨 이유로든 주변에 사람이 많다. 외로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결혼해서 손해 보는 쪽은 여자다. 인생의 전성기에 있는 여성이 결혼 결정을 하기가 썩 내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지도 모를 그녀가 어머니에게 등 떠밀려 어찌어찌 내 고객이 되었다. 이 정도 여성이면 대개는 같은 수준의 남성을 소개한다. 말하자면, SKY대 졸업, 전문직이나 사무관급 이상, 부유한 집안 출신, A급 남성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첫 번째로 소개한 남성은


2살 연상의 SKY 출신 의사였다. 집안도 좋고 성격과 인상도 무난했다. 그런데 결과는 별로였다. 남자가 뭘 바라는 눈치였다는 것이다. 여자 말로는 “능력도 있고, 돈도 있는 남자가 여자 덕 보려고 하는 건 너무 욕심이 지나친 거 아닌가요? 인생 너무 지름길로만 가려는 거 같아서 ”동대문 시장부터 시작해서 현장을 훑으며 경험을 쌓아 정상에 오른 그녀로서 당연히 할만한 소리였다.


 
두 번째 소개남은


3년 연상의 S대 출신 사무관급 공무원이었다. 그 남자를 만나고 온 그녀의 표정은 싸늘했다. 활달함을 가장해서 몸을 밀착시키고, 은근슬쩍 손도 잡으려고 하고 너무 여자를 쉽게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이번엔 Y대 출신 변호사를 소개했다. 첫 만남부터 양해도 없이 약속에 늦게 나오고,

자리를 뜰 때 먼저 일어나서 나가버리고, 매너가 안 좋다는 것이다.

 

남자들도 처음에는 호감이 간다고 하다가 여자 반응이 시큰둥하니 이내 돌아섰다. 남녀 만남이라는 게 서로 불이 붙거나 어느 한 쪽이라도 굽히거나 적극적이어야 하는데 두 사람 다 “나 잘 났소”하니 잘될 리가 없었다. 겨우 마음에 좀 드는 사람을 만났는가 싶다가도 마음에 안 들면 미련 없이 헤어졌다. 잘해봐야겠다는 의지나 집요함이 없었다. 이런 식의 만남이 반복되다가 1년이 흘렀다.

 

그러다가 여성과 진솔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그 사이에 우리 둘 사이에 친근감과 신뢰감이 생긴 것 같았다. 나도 그녀가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좀 더 솔직해지고 싶었고, 그녀 역시 그동안 만남의 결과가 안 좋았음에도 여전히 나를 믿는 눈치였다. 나는 내내 마음에 두었던 말을 꺼냈다.

 

“지금까지 A씨는 일등 신랑감들만 만났어요. 그런데 안되었죠.

앞으로 이렇게 만나면 결과는 마찬가지일 거예요.

내가 보기에 A씨는 사업을 해서인지 성격이 강해요.

남자가 맞춰주길 바라는데,

A씨 레벨의 남자들은 그런 사람 없어요.”


“그렇죠? 제가 좀 그래요. 그럼 결혼하기가 어렵겠죠?”
“역발상을 하면 길은 있어요. 용 꼬리 대신 닭 머리가 되는 거죠. A씨는 사업을 하니까 개런티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착하고 건강한 그런 사람.”


내 말을 듣던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기보다 못한 남자를 만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결혼해도 사업을 할 건데, 그러면 가정에 많이 할애할 수 없을 거 아녜요? 성공한 남자들 만나면 분명히 내조를 해야 할 텐데, 그거 잘할 수 있어요? 차라리 A씨를 서포트해줄 사람이 낫다는 거죠. 꼭 남자가 여자보다 많이 벌고, 성공하고, 잘나야 해요? 서로 맞는 사람이 최고죠.”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그녀가 생각을 해보더니 한번 만나보겠다고 했다. 아무나 소개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건강하고 인상도 괜찮고 직업이나 수입은 평범한 사람 그리고 여자의 활동을 지원해줄 수 있는 남자 신부였다.

거기에 딱 맞는 남성들이 몇 있었다. 먼저 소개한 사람은 수도권에 있는 대학을 나온 두 살 연상의 웹디자이너였는데, 연봉은 400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수적인 계산으로 치면 그녀의 한 달 월급이 남자 연봉보다 더 많았다. 하지만 이미 남자신부를 만나기로 결심이 선 그녀에게 그 부분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외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둘을 더 소개했다.

혹 남자들이 잘난 여자를 만나면 자존심 상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돈 잘 버는 여성은 남성의 로맨스다. 똑똑한 여성들이 많은 시대에 남성들의 생각은 ‘이왕이면 잘난 여자’로 바뀌는 것이다.
이런 만남에서 남성 쪽이 적극적이면 여성도 결국 반응이 나타난다. 그녀는 결혼결심을 굳혔는데 어머니가 평범한 사윗감에 대해 서운해했다.

"어머니, 따님이 결혼해서 사업 접을 것도 아닌데 잘난 사위 만나 안팎으로 뛰면서 힘들게 사는 거 원하세요? 의사, 판사 사위 보면 뭐가 좋은데요? 잘난 남자들, 와이프 타이틀 내세우기만 했지 자기 일도 바쁜데 어떻게 이해하고 도와주겠어요. 따님이 자기 뜻 훨훨 펼치면서 살게 허락해주세요.”
그렇게 두 사람은 결혼했다. 여성이 집을 마련했다. 남성이 결혼자금이라고 모아둔 약간의 돈은 양가 어머니께 감사의 뜻으로 드렸다고 한다.

남자신부의 생소한 역할은 내가 약간 귀띔을 해줬다. 남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 웹디자이너로 재택근무를 선택했다. 아내가 임신으로 거동이 불편해지자, 남편은 아내 회사를 드나들면서 업무 보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이가 태어나자, 아예 일을 쉬면서 육아를 맡았다. 그녀 사업이 번창하자, 그녀는 남편에게 보너스를 두둑하게 줬다. 승용차를 바꿔주고 좁은 아파트에서 생활하던 시부모님을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으로 모셨다.

여자 신랑, 남자 신부로 참 잘 만난 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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