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의 J씨는 맞선을 보기 시작한 지 10년째다.
“30대 호반까지야 마음의 여유가 있어선지 만남 결과가 안좋아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아직 시간이 있다, 뭐 이런 생각이었죠. 그러다가 30대 중반 넘어서니까 슬슬 초조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 화도 나더라고요.”
“누구한테 화가 나는 거죠?”
“여자들한테요. 나같은 남자가 결못남이면 세상에서 결혼하는 남자가 몇이나 될까, 여자들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닌가, 하는 거죠.”
“본인이 어떤 남자라고 생각하세요?”
“정년 보장된 직장 다닌다. 키 크고 배 안나오고 대머리도 아니다. 배울만큼 배웠다. 작지만 내 집도 있고, 차도 있다. 술 담배 안한다. 성격은 무뚝뚝한 편이지만, 한편으로는 남자답다는 소리도 듣는다. 원하는 애우자 조건은 학력, 경제력은 상관없는 대신 약간의 외모, 몸매 필수, 인성과 교양을 갖춘 소탈한 인성을 가진 여자. 이건 결못남이 아니라 결꼭남(결혼 꼭 하는 남자)의 조건 아닌가요?”
얘기가 길어지면서 그는 좀 흥분한 듯했다. 그의 심정도 이해는 된다. 소위 남성의 3대 배우자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학력, 직업, 집을 갖췄으니 기본은 된 건데도 결혼하기가 어려우니 여자들 눈이 높다는 데로 화살을 돌릴 수도 있다. 게다가 자신은 여자한테서 큰 거 바라지 않고, 소탈하게(?) 외모와 몸매, 성격 정도만 보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자기 생각일 뿐이다. 이 얘기를 당사자가 누군지 빼고 몇몇 여성들한테 해줬다. 여성들 생각이 궁금해서다. 그랬더니 다들 고개를 젓는다. 그 남자가 뭔가 잘못 알고 있다는 거다.
“뭔가 본인을 과대평가 하는 것 같다. 이성관계가 되려면 최소한의 외모 기준이 있다. 다른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남자가 두 번 보기 싫을 정도의 외모라면 어떤 여자가 만나겠나. 본인 외모를 친구나 가족이 아니라 여자들한테 한번 평가받아 보는 게 좋을 듯하다.”
“여자들이 그저 집 있고, 차 있고, 직장 좋은 남자만 찾는 줄 아는 모양이다. 요즘 여자들도 사회생활 하면서 그 정도 조건은 된다. 본인 스스로 성격이 무뚝뚝하다면서 그것을 남자답다고 좋게 말한다. 너무 자기 위주다.”
“여자 학력, 경제력 안본다고 했는데, 하한선이 없다는 건가? 극단적으로 본인은 대졸인데, 고졸이어도 좋고, 여자 부모를 부양해야 된다고 해도 좋다는 건가? 그러지는 않을 거다. 상관 안한다는 조건도 최소한의 기준이 있을 거다. 그렇다면 그건 다른 조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본다는 거지, 전혀 안본다는 게 아니다.”
“약간의 외모와 몸매 필수? 무슨 선발기준 같다. 오로지 외모와 몸매가 우선이라는 말로 들려서 기분이 안좋다. 결국 여자 얼굴 밝힌다는 거 아닌가?”
이런 얘기들을 그 남성에게 그대로 들려주고 싶을 정도로 속이 시원했다. 나이가 들면 어떤 선택을 할 때 100% 내 기준으로만 결정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옷을 사는 경우, ‘내 나이에 맞나?’, ‘남들 보기에도 무난한가?’를 한번쯤 생각한다. 그건 남의 시선이나 생각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옷이라는 게 남들 눈에도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은 더욱 그렇다.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남녀 양쪽의 입장이 조화롭게 버무려져야 한다. J씨는 본인이 규정하는대로 결못남이다. 그건 본인의 조건 때문이라기보다는 생각이 문제다. 우선 결혼을 못하는 이유가 본인 말을 요약해보면 “나는 갖출 거 다 갖췄는데, 여자들이 눈이 높아서다.” 또 자기합리화가 지나치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무뚝뚝한 남성을 좋아하지 않는데, 본인만 아무 문제 없단다. 물론 혼자 산다면야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한들 무슨 문제인가. 결혼을 생각한다면 그런 성격적인 부분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본인은 얼굴 예쁘고 몸매 좋고, 성격도 좋은 여성을 찾으면서도 ‘약간의 외모와 몸매’라고 에둘러 말한다. 정말 ‘약간’이면 되는 건지, 그동안 ‘약간’ 갖춘 여성을 못만난 건지, 만났는데도 ‘더’ 갖춘 여성을 찾았던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다. 결못남이건, 결못녀이건, 결혼 못한 이유는 남이 아니라 본인에게 있다. 그동안의 만남, 본인의 배우자 조건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권한다. 한해의 마무리를 겸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