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하고 있으면 관심 없는 티를 낸다고 하고, 그래서 다른 여자를 만날 때는 말을 좀 많이 했어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남자가 말이 많아서 가볍다고 하네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어요.”
결혼 결심을 하고, 요즘 한창 맞선을 보고 있는 30대 초반의 A씨는 말 주변이 없는 편이다. 맞선은 대개 남자가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분위기라서 여자를 만날 때마다 참 난처하다. 그래도 최소한 30분 이상은 얘기를 나눠야 하는데,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할 수 있는 얘기라는 게 한계가 있다. 다행히 말 잘하는 여자를 만나면 그나마 다행인데, 자신처럼 말이 없거나 내성적인 성격의 상대를 만나면 몇마디 하고 침묵, 간신히 몇마디 하고 다시 침묵, 이런 상황이다.
올해 안에 결혼은 아니더라도 교제는 시작하라는 어머니의 강권에 못이겨 거의 매주 여자를 만나는 A씨는 남녀가 만나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모이는 대화방에서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다.
“나는 말이 많은 편인데도 처음 만나는 여자랑 대화를 한다는 건 쉽지 않더라. 첫 만남에서 말문이 막히는 건 당연한 거니까 말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안갖는 게 좋을 것 같다. 첫 만남은 대화거리가 딸리므로 1시간 이상은 비추. 좋은 인상으로 다음 만남을 기약하게 되면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처음보다는 덜 어색해서 대화하기가 좀 더 쉽다는 게 내 경험이다. 친구야, 올해는 총각 딱지 꼭 떼라.”(친구1)
“상대방 말에 호응을 해주는 것도 좋을 듯. 단답형으로 대답하더라도 상대는 어떠냐고 되물어보면서 얘기를 해나간다.”(친구2)
“이성간 대화도 그렇고, 일상의 대화도 말을 억지로 하려고 하면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신뢰감도 떨어진다. 상대가 나보다 눈치가 더 빠르고 머리도 더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자신을 속이거나 과장된 얘기는 안하는 게 좋다. 할 말이 생각 안나면 차라리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하면 상대는 진실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친구3)
“어차리 솔로들끼리 만난 건데, 왜 아직까지 솔로냐, 가장 최근의 연애는 언제냐, 왜 헤어졌냐, 이런 질문은 절대 하지마. 난 첫 만남에서 상대가 그런 얘기를 하니까 전애인에게 미련이 있는 것처럼 들리더라.”(친구4)
친구들 말을 듣던 A씨는 문득 허세나 돈 자랑 같은 거 안하는 게 좋다던 친구의 조언이 생각났다. 하지만 어차피 맞선이라는 건 서로의 조건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기껏 만나서 감성적인 얘기만 할 수는 없다는 게 A씨의 생각이었다.
“니들 생각은 어떠냐?”
“여자 입장에서는 남자의 경제사정이 어떤지 분명 궁금할 걸.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어도. 그 부분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친구1)
“내 생각에는 돈 많은 슈렉과 결혼할 여자는 드물 거 같다. 처음 한두번 만날 때는 돈 얘기 같은 현실적인 주제보다는 좋은 느낌 줄 수 있는 멋진 얘기, 내면의 얘기, 그런 부분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을까?”(친구2)
A씨는 자기처럼 말주변이 없는데도 일찌감치 결혼한 친구의 생각이 궁금했다.
“넌 어땠냐?”
“난 내 본성 그래도 만났다. 말 못하는 게 흉도 아니고. 이런 내가 싫으면 안만나면 되는 거고. 그래서 처음 만날 때 까놓고 내가 말이 없는 편이다. 그러니 말 안한다고 기분나빠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대신에 상대의 말에 잘 호응해주고, 표정으로 얘기했지. 잘 들어주는 것도 말을 잘 하는 것만큼 중요하더라고. 그랬더니 너도 아다시피 연애할 때마다 나 차인 적 없잖아.”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A씨가 깨달은 게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고, 그 모습을
이해해주는 여자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것. 지금까지 자신이 연애를 못했던 건 단지 말주변
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얘기했다니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떠든다.
“야! 그럼 지금까지 충고랍시고 떠든 우리들은 뭐가 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