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가 결혼한 딸의 방을 치우지 않는 이유
얼마 전 자녀를 결혼시킨 지인이 결혼식에 와준 감사의 뜻으로 점심을 대접했다.
“따님방 치우면서 안울었어요?”
“아직요, 뭐 치울 필요 있겠어요. 애들 오면 쓸 방도 필요한데..들어보니
요즘 결혼한 자식들 방을 그대로 두는 집이 많대요.“
그런 말은 나도 들었다. 요즘 하도 이혼이 많아서 부모들이 만약을 대비해서 1-2년 정도는 쓰던 그대로 방을 놔둔다는 것이다. 자식이 결혼해서 잘사는 걸 바라는 것이 부모 마음이지만, 이혼세태에 이제 부모들은 이런 것까지도 염두에 두는구나, 싶어서 씁쓸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런 부모를 알고 있다.
50대 중반의 이 여성은 3년 전에 딸을 결혼시켰다. 당시 딸은 대학을 갓 졸업한 나이여서 부모는 시간을 두자고 했지만, 죽고 못사는 딸 커플 앞에 결국 두 손 들 수 없었다. 그나마 사위가 잘사는 집 아들이라 먹고 사는 걱정은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런데 결혼 몇 달만에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변변한 직업 없이 3년째 구직 중이던 사위가 인터넷 도박에 빠져 있는 돈 다 털어먹고 빚까지 지게 된 것이다. 울고 불고 하면서 친정에 온 딸은 한번 더 기회를 줘보겠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부모로서도 사위가 마음에 안들었지만, 살아보겠다는 딸을 말릴 수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었던 모양이다. 딸 부부는 결혼할 때 시댁에서 마련해준 중형 아파트를 팔아 전세로 갔다가 다시 돈에 쪼들려서 월세로 옮겼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 딸은 가방 하나 들고 친정으로 돌아왔다. 아예.
“애가 돌아올 걸 짐작한 건지, 그 방 정리를 못하겠더라고요, 괜히 이런 생각 한 것 땜에
부정 탄 건 아닌지..”
“인연이 아닌 걸 부모가 어쩌겠어요. 요즘이야 가족이 단촐해서 자녀 출가해도 방이 남아돌아
굳이 치우고 말고 안하잖아요.
그리고 결혼해도 계속 드나들면서 방을 쓰기도 하고요.”
“자식이 이혼하는 거 반기는 부모가 어딨겠어요, 근데요. 걔 걱정할 때마다 쓰던 방에 들어가면
차라리 다 정리하고 와서 같이 사는 게 낫겠다, 이러다 심장병 걸려 죽겠다, 싶을 때 주인
없는 방에 혼자 들어가 울면 속이 다 시원해지더라고요. 이제는 그럴 일 없겠지만요.”
어머니는 처음에는 너무 마음이 아팠지만, 이제는 딸이 제 방에서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생
활하는 걸 보게 되어 안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많은 감정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을 그대로 놔둔 보람이 있다고 하면 속 없는 사람 같을까요? 딸애도 친정에 자기 방이
없었으면 마음 편히 돌아오지 못했을 거예요.“
이런 게 이혼 많이 하는 시대를 사는 부모님들의 모습이고, 마음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