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던 사무실에 유난히 톤이 높은 목소리가 퍼졌다.
“어머니. 이러시면 안 되죠. 정도가 너무 지나치신 거 같아요, 이제 그만하실 때도 되지 않았나요?”
들어보니 나랑 같이 20년 일한 매니저다. 알아서 하겠거니 싶었지만, 이렇게 목소리를 높여 흥분한 걸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없었다. 알고 보니 통화 상대는 몇 달 전에 나한테도 야단(?)을 맞았던 분이었다.
이유는 딸의 맞선 상대에 대한 뒷조사를 지나치게 하다 보니 상대가 눈치를 채고 항의를 한 일이 몇 차례 있었던 터였다.
“아버님. 따님도 그랬지만, 여기 가입할 때 기본 신상정보를 확인합니다. 구체적인 부분은 그렇게 뒷조사를 하는 게 아니라 교제하면서 서로 알아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근데 수소문을 하고 다니시다니요. 이건 완전히 사생활 침해로 고소감입니다. 그쪽 집안에서도 자식 있는 입장에서 이해하겠다고 넘어가 주신 게 다행이지요.”
“감출 게 없으면 겁날 것도 없잖아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건데, 뭐가 나빠요? 버선 속 뒤집듯이 사람 속을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의도적으로 숨기려면 얼마든지 숨길 수 있는 거죠.”
“그렇게 못 미더우신데, 여기는 어떻게 가입을 하셨어요? 저희를 믿어주시지 않으면 소개해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 후 내가 아닌 다른 매니저에게 소개를 받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조치를 했는데, 거기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여성은 누가 봐도 매력적이었다. 딸의 미모가 탁월하고, 남성들이 많이 따르다 보니 자연히 부모의 기대치가 높아졌고, 그래서 딸의 결혼에 집안이 다 나선 상황이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위치에서 뒷조사가 쉬웠다고 한다.
만남 상대가 정해지면 남성 본인은 물론 집안을 샅샅이 조사한다. 남성이 사는 집까지 가서 확인할 정도다.
어느 날인가, 여성의 아버지가 사무실을 방문했다. 두툼한 봉투를 들고 왔기에 직원들 격려차 사온 간식거리인가 싶었다. 물론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아버지가 봉투에서 꺼낸 것은 서류뭉치였다. 그 여성에게 소개하기로 한 남성의 출신 학교, 직장 등 세세한 정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아버님, 이런 걸 다 어떻게 모으셨어요?”
“마음만 먹으면 다 아는 수가 있지요. 근데…. 이 친구는 연봉이 000라던데, 그 회사 5년차 직원 연봉이 그 수준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도대체 결혼준비는 어느 정도 되어 있다는 겁니까?”
“아버님. 아직 만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결혼준비까지 얘기하시는 겁니까? 그 부분은 교제하고, 얘기가 오가다 보면 확인할 수 있는 거고요.”
“기껏 결혼 약속까지 했는데, 얘기가 달라지면요. 여자 쪽이 상처를 더 받는데, 그러면 안 되죠.”
“저도 딸이 둘이라서 딸 가진 부모 마음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요즘 개인정보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지 않습니까? 아버님 하시는 일이 도가 지나치면 큰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