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그 자체가 기대와 희망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최근 들어서는 우리 나라 이혼율이 선진국 수준을 능가하고 있어 1여년 간 결혼정보회사에 몸담아온 필자의 마음은 갈수록 우울하기만 하다.
올해 스물아홉 살의 은행원 A씨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 쓰고 세 살 아래의 아내와 1년 전에 결혼했다. A씨의 아버지는 무남독녀에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한 며느리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이냐, 조건이냐를 놓고 벌어진 이들 부자(父子)의 줄다리기는 지난 30년 사이의 결혼문화와 가치관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70~80년대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결혼 방식의 흔적이 남아 있어 부모의 영향력이 컸다. 그런 만큼 부모가 좋아하는 조건, 예를 들어 남자는 안정적인 직업과 좋은 인상, 여자는 살림 솜씨가 있으면 대개 결혼이 이뤄졌다.
하지만 90~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젊은 세대의 자유로운 기질과 독립적인 성향은 부모보다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우선시하게 됐다. 그리고 보편적인 결혼의 조건 외에 행복 추구라는 새로운 면이 추가됐다. 그러니까 배우자 선택기준이 훨씬 다양해지고, 합리적으로 변했다.
기성 세대의 눈으로 보면 영악스러울 수도 있지만, 결혼의 불확실성에 대한 인식으로 현실적이면서도 신중한 안목을 갖게 된 것이다. 젊은 세대는 자기 중심적인 가치관으로 인해 조건을 따지고 순수하지 못하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오히려 조건으로 만나 결혼한 쪽은 부모 세대이고, 그런 시각을 가지고 사랑으로 만나는 요즘 세대를 재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젊은 세대의 합리적인 사고 방식은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기도 했다. 결혼비용의 거품이 빠지면서 지난날 의례적으로 장만하던 혼수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또한, ‘열쇠 3개’로 대변되던 상류층의 결혼 문화도 젊은이들이 집안의 재력보다는 개인적인 능력을 더 중요시하면서 차차 사라지고 있다.
물론 요즘 젊은이의 사랑법에도 문제는 많다. 이혼자들의 결혼 주기를 보면 70, 80년대에는 교제 1년, 결혼 생활 12년 만에 이혼했는데, 90년대에는 결혼생활이 평균 5년 6개월, 2000년대에 들어서는 3년 8개월, 최근 들어서는 1년도 채 안 돼 갈라서는 커플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그만큼 결혼 주기가 짧아지고 있는 것이다.
자기 감정에 충실하여 사랑에는 더욱 과감해졌지만, 부모로부터 배우자 선택 방법을 충분히 학습 받지 못한 것, 그러다 보니 결혼 후에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요즘 세대의 한계다.
여성의 활발한 사회 참여는 결혼 문화에 있어서 큰 변화를 가져 왔다. 우선, 처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장모와 사위의 갈등이 깊어졌으며, 이들의 새로운 관계 정립이 가정을 유지하는 열쇠가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게다가 여성이 경제력을 갖추면서 이전처럼 남편의 수입에 의존하여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지속하는 경우가 줄어들게 됐다. 이혼 제의 가운데 거의 절반 이상이 여성에 의해 이뤄지는 것을 보더라도 여성의 자기 인식과 지위 향상은 결혼에 대해 독립적인 성향을 갖는 계기가 됐다.
결혼 문화는 한 사회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 등을 가늠하는 또 다른 지표다. 문화의 변화는 반드시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때로는 전통의 기반 위에 새로운 세대의 합리적인 성향이 조화를 이뤄 비로소 완성되기도 한다. 요즘 세대는 분명 그들 부모보다는 결혼에 대해 솔직하고, 훨씬 인간적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했던 부모 세대에 비해 그들은 비단 의식주뿐만 아니라 오감이 만족하는 결혼을 원하고 있다.
결혼이 개인이 아닌 집안 중심으로 이뤄졌던 부모 세대, 그리고 결혼을 행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요즘 세대. 이 두 세대 사이에는 경험과 가치관에서 세월의 길이만큼이나 큰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이들 두 세대가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자 노력할 때 행복한 결혼, 건강한 가정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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