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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스토리-3] 화장지 리어카 영업으로 얻은 소중한 자산 :: 체력, 안목, 근성, 그리고 사업감각
sunwoo | 조회 2,746 | 04.26.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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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지금 벌써 30년째 사업을 하고 있다. 아직 큰 성공을 이룬 것도 아니고, 여전히 내 사업은 현재진행형이고, 늘 도전하는 내 인생에 또 어떤 시련이 닥칠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겁 없이 미래를 향해 고개 똑바로 들 수 있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갓 스물에 처음 시작한 화장지 리어카 행상을 통해 체력, 세상을 보는 안목, 근성. 그리고 사업감각을 갖게 되었다.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난이 늘 따라다녔다. 아버지는 잘 생기시고, 성격이 카랑카랑하신 남자다운 분이셨다.


서울에 올라와 터를 삼았던 정릉에서 아버지는 사업을 하시고, 어머니는 달걀 15-20판을 머리에 이고 행상을 다니시면서 자리를 잡아가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친 가난, 아버지는 화양리로 거처를 옮기시면서 우리 집은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었다. 만화 가게를 여신 아버지를 돕기 위해 나도 화양리로 갔다. 막 중학교를 졸업하던 때였는데, 점원 둘 형편이 안 되서 내가 가게를 봐야 했기 때문에 결국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성수중학교 담임이셨던 임형묵 선생님께서 3번이나 찾아오셔서 아버지를 설득하셨지만, 아버지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으셨고, 미안한 마음에 직접 선생님을 뵙지 못하시고, 지인을 대신 보내서 말씀을 전하셨다.


그 시절 만화가게는 동네 건달들이 모이는 아지트였다. 그 중에 혼자 가게를 보는 어린 나를 우습게 본 건달 몇몇이 짖궂은 장난으로 나를 괴롭히기도 했는데, 그러던 중 내 또래 건달들에게 꾀여서 얼마간 어울리게 되었다. 아버지 몰래 가게를 비우고, 가끔은 밤을 새고 들어오기도 했다. 얼마 후 운명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저녁에 십 여명이 모여 돌아다녔는데, 그날따라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패거리들이 붙잡는 것도 뿌리치고 집에 들어갔다. 다음 날부터 패거리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날 밤에 동네 복덕방 화투판에서 돈을 훔쳤다가 경찰서에 붙잡혀갔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저 친구 비슷하게 생각했던 그들이 불량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부로 막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새 머리가 커버린 나는 예전처럼 만화가게에 틀어박혀 답답하게 살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 가출을 감행했다. 불광동에 있는 화장지 대리점에서 화장지를 받아다가 리어카 행상을 했는데, 마침 대리점에 기숙사 비슷한 숙소가 있어서 잠자리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비가 새고, 군데군데 곰팡이가 핀 허름한 곳이었지만, 월남전 참전 상이군인, 떠돌이 남성 등 사연 많은 서너명이 몸을 맞대고 함께 지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조금씩 절로 세상을 알아가고 있었다.


리어카 행상은 남의 눈도 신경쓰이고, 몸도 고되었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 나는 남들보다 3-4배 이상 매출을 올렸다. 물론 거저가 아니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돌아다녔고, 더 많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배달개념을 도입했다. 당시 4대문 안의 5층 미만 건물들은 대부분 큰 회사가 아니라 개인 사무실이었는데,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고객을 확보했다. 엘리베이터가 드문 때였다. 하루에도 수십층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화장지 배달을 하다 보니 어느새 허벅지가 단단해졌다. 한 개라도 더 팔겠다고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달리면서 체력도 길러졌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화장지 장사가 잘되었던 것은 내 수완이 좋아서라기보다는 학생티를 못벗은 나어린 청년이 살아보겠다고 돌아다니는 게 안쓰러워서 다들 도와주신 덕분이었던 것 같다. 크게 내색은 안해도 눈이 마주치면 따뜻하게 웃어주고,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던 사람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리어카 행상을 하면서 길러진 체력과 근성은 그 후 결혼정보회사를 시작하고 25년 동안 수시로 내 앞에 닥친 많은 시련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던 길에서 어느날 벽에 붙은 검정고시 학원 광고지를 보게 되었다. 열심히 화장지를 팔면서도 ‘이게 내 인생의 끝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고, 못다 한 학업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광고를 보고 간 곳이 신설동의 모학원이었다. 새벽반 수강신청을 했다. 다음날 꼭두새벽에 157번 버스를 타고 신설동에서 내려 학원가는 길에 문득 하늘을 보니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나를 위해 떠오른 태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었다.


새벽반을 듣고 화장지를 파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야간반으로 옮기고 화장지 판매지도 불광동에서 신설동으로 옮겼다. 한 곳에 눌러앉아 장사하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행상을 한 덕분에 세상을 넓게 보게 되고, 많은 인연이 만들어졌다. 그때 인연을 맺은 몇사람은 훗날 내 회사에서 커플매니저로 일하기도 했다.




천군데 넘게 거래처를 확보하면서 나는 그분들을 대상으로 책을 빌려주는 글벗 도서체인점을 시작했다. 그 얼마 후 유행했던 도서대여점의 전단계였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을 모으고, 관리하는 방식의 사업 경험은 결혼정보회사를 시작하는 단초가 되었다. 그러니까 서울 사대문안을 누볐던 나의 리어카에는 체력, 안목, 근성, 그리고 사업적인 감각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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