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가 열어준 문으로 피부가 좋고, 머리를 뒤로 멋있게 넘기고 명품으로 치장한 중년 남성이 내린다.
멀리서 봐도 분위기 있는 그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다리던 분이다.
“이대표 늘 고맙게 생각해요. 우리 애 신경 써줘서. 근데 요즘 연락이 좀 뜸하네. 옛날 같지가 않아. 애 결혼만 되면 내 그 은혜는 잊지 않을 테니 좀만 더 노력해줘요.”
이 분은 대대로 부자 소리를 듣던 집안 출신으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업가이다.
그런데 오늘은 유명인사가 아니라 아버지로서 내 앞에 앉아있다. 이 분에게는 100점짜리 아들이 있다.
맞선 현장에서 100점짜리라고 하면, 먼저 학벌과 직업은 소위 SKY 의대나 미국 아이비리그 의대를 졸업한 의사, 혹은 그와 동일한 대학 출신의 교수나 판검사, 그에 준하는 직업을 가져야 하고, 175 이상의 키와 몸무게가 조화를 이루면서 A급 외모, 그리고 부모의 학벌과 직업, 경제력 등이 최고 수준인 경우를 말한다. 이런 경우는 1000명 중에 1명 정도 있다.
이 분의 아들이 바로 그런 경우인데 아버지의 자랑인 이 아들이 서른을 훨씬 넘기고도 아직 결혼 소식이 없으니 부모로서는 속이 탈만도 하다. 이렇게 부모님이 자신의 짝을 찾아주는 것이 우리 결혼문화의 한 현상이다. 한국의 결혼이 가족혼의 경향을 띠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세상에 공평한 것이 부모가 자식 결혼시키는 것이다. 공사판에서 막노동 하는 부모나 시장통에서 장사하는 부모나 재벌가 부모나 자식 혼사 문제 앞에서는 똑같아진다. 세상 그 누구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자식 결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 결혼을 준비하면서 겸손해진다.
아들은 현재 30대 중반으로 그가 2~3년 전에 지인을 통해 소개를 의뢰 받았다. 집안이 워낙 좋고, 본인도 출중하다 보니 처음에는 맞선이 순조롭게 진행되리라 예상했다. 아버지의 요청이 있었던 만큼 우선은 집안을 먼저 보고 소개하기로 했다. 좋은 집안이라 함은 1급 공무원 이상, 혹은 명망 있는 집안을 말한다. 어디 내놓아도 손색 없는 여성을 소개했다. 하지만 만남 후 여성은 호감이 있는데 아들은 시큰둥했다.
“허허… 이대표가 공을 들였는데, 아들이 더 욕심이 생기나 봅니다. 첫 술에 배부르겠습니까”
그렇다면 외모를 많이 보는가, 싶었다. 대개의 남성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래서 미스코리아 출신이면서 여러 모로 손색 없는 여성을 소개했다.
‘이 정도 미인을 거절할 리 없다’는 나의 확신은 아들의 거절로 깨지고 말았다.
명문가 딸도 미스코리아 출신도 마다하는 아들은 누구인가?
“남자라면 외모 따지는데, 아드님 취향이 남다르네요. 어떤 여성을 원하는지, 아드님과 얘기 한번 해보셨어요?”
“다 큰 자식한테 부모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아무 말 안하고 선보러 나가는 것만도 고마운데요. 이 대표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좀 더 노력해줘요.”
집안도 아니고, 외모도 아니라면 그럼 직업? 실제로 요즘 남성들은 집안보다 여성 자신의 능력에 더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전문직의 경우, 같은 전문직을 선호한다. 그래서 최고 명문대 의대를 졸업한 여성을 소개했다. 그런데 아들은 이번에도 거절했다. 이렇듯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이런 상황이 10여번 반복되면서 나는 아버지에게 분명하게 말했다.
“이 정도 되면 분명 아드님에게 만나는 여자가 있는 겁니다. ”
“교우관계가 좋아서 친구나 후배는 많이 만나도 정해놓고 만나는 여자는 없는 걸로 아는데 여자가 있으면 왜 맞선을 본다고 하겠어요?”
20여년 동안 10만명 넘게 만남을 주선하다 보면 청첩장을 받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인사는 주고 받는 사람이 그 중 4~5만명은 된다. 아는 사람이 각계각층에 포진되어 있다 보니 그런 인맥을 활용하면 웬만한 것은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수소문한 결과를 종합해보면 그 분의 아들은 이성애자가 아니라는 결론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귀는 여자도 없으면서 열 여자를 모두 마다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아버지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아드님은 이성상이 까다로워서 제가 소개해드리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최고의 여성들만 찾아드렸는데도 안되니까요.”
“그래서 내가 나서서 애를 쓰지 않습니까? 몇 번만 더 부탁할께요. 그래도 안되면 더 이상은 이대표 안괴롭힐테니….”
부와 명성을 다 가진 분이 어디 가서 이런 아쉬운 소리를 하겠는가.
노력하겠다는 말로 아버지의 초조한 마음을 달래는 것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커피숍을 나가는 그분을 바라보았다.
공인으로서는 당당하고 멋진 모습일지 모르지만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작고 씁쓸해 보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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