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정보회사 선우 대표 이웅진이 들려주는 미국 싱글남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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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둘째 날, 아침에 한참 샤워 중일 때 휴대폰이 울렸다. 오늘 아버님 한분과 만날 예정인데, 약속시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다. 혹시 싶어 비누도 제대로 안닦고 전화를 받았다. 그 아버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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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오셨어요?”
“차가 안막혀서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어요...”
“금방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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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부터 계속된 한파로 무척 추운 날씨였다. 추위에 떨고 있을 그분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집에서 사무실까지는 300미터 남짓, 한달음에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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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세의 그분은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는데, 역이민을 온 케이스다. 직업이 약사인데, 미주로 이민을 갔다가 남매가 장성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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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아들의 혼사 때문에 사무실을 방문했다. 여성 입장에서 이런 시아버지, 시부모를 만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점잖고, 겸손하고, 자애로운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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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도 부모님의 품성을 닮아 인성이 좋다. 현재 캐나다에서 좋은 직장에 다니고, 결혼준비도 되어 있다. 좋은 조건임에도 주변에 한국계가 많지 않고, 결혼을 돕거나 신경써줄 부모님이 한국에 있다 보니 결혼이 늦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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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만남 상대를 찾는 중인데, 오늘 방문한 목적은 딸의 중매였다.
“오빠가 나이 들어 결혼하겠다고 저렇게 애쓰는 걸 보면서 생각한 게 있는지
먼저 나서더라고요. 사람들 만나보겠다고요.”
“다행이네요. 여성분들은 많은 걸 이루고도 나이 때문에 만남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자식들 결혼만 잘 하면 부모로서 할 일은 끝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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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입장에서 딸도 결혼에 관심을 가져줘서 무척 기쁜 모양이었다. 인생의 성취를 이룬 분들이 자식들 결혼이 늦어지거나 잘 안되서 걱정하는 걸 많이 봤다. 평생 누구한테 고개 숙이거나 부탁 한번 안해본 분들이 뒤늦게 자식 결혼 문제로 사정을 하고, 하소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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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딸의 회비라며 봉투를 내밀었다. 아들 회비를 많이 받아서 딸은 그냥 소개를 하겠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비싸 보이는 포도주 한병도 함께 건넸다. 자꾸 거절하기가 어려워 받았다. 내가 대접할 거라고는 잘 탈 줄 모르는 커피 한잔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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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세 아버지는 경기도 외곽에서 평창동까지 먼 거리를 달려왔다. 나도 두 딸의 아버지라서 그런 부모의 마음을 잘 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할텐데, 자식들 일이다 보니 부모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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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자식들 결혼이 늦어진 게 부모 탓인 것 같아 미안하고 안쓰럽다고 했다. 부모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일이 많았고,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자식들 결혼이 늦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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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30대 후반이고,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으며 활동하는 전문인인데도 부모는 자식 걱정 뿐이다. 아버지는 건강하고 젊어보였지만, 75세 정도면 이제 여생을 오롯이 자신을 위해 보내야 할 나이다. 그런데도 아들 딸이 결혼 전이라 아버지의 어깨는 아직도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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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한국 부모님의 운명인 것 같다. 자식이 대학만 가면 걱정 없을 것 같다가 취업 때문에 또 걱정하고, 제 때 출근하는 거 보면 두 다리 뻗고 자겠다 싶다가 결혼 때문에 또 걱정한다. 그리고도 부모의 걱정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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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많은 부모님들을 만났지만, 유난히 추운 날씨 때문인지,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이 아버지와의 만남이 자꾸 마음을 움직인다. 많은 감정이 교차된 새해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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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준 와인을 아내에게 주니 “이거 비싼 와인인데?”하면서 놀란다. 알고 보니 수십만원짜리란다. 덕분에 아내에게 점수 좀 땄다. 문득 머지 않아 우리 부부에게도 닥칠 딸들의 결혼문제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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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웅진, 결혼정보회사 선우 대표 ceo@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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