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회사 30년차가 되다 보니 인간사의 드라마틱한 순간들을 많이 접했다. ‘남녀 만남에서 저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그런 생각도 많이 했다.
심지어 내가 경찰관을 사칭했던 일도 있었다. 경찰관 사칭은 범죄행위로 처벌받는데, 25년 지났으니 공소시효가 끝났을 것 같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정황이 참작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당시는 너무나 긴박한 상황이었다. 추선 전날이었다. 그 날을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명절을 앞두고 부모님을 뵈러 가려고 업무를 마무리하고 사무실을 막 나가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오후 4-5시였는데, 전화가 왔다. 한 여성 회원이 울면서 다급하게 도움을 청했다.
“성폭행을 당했어요. 저랑 경찰서에 같이 가주실 수 있을까요? 도와주세요...”
회사 초창기였고, 나도 당시 미혼이었다.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고 직감한 나는 여성이 있는 곳을 물어봤고, 목동전화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여성의 주소와 연락처가 적힌 가입서류를 챙겨들고 나왔다.
1시간여 후에 도착한 목동전화국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업무가 끝난 전화국, 그리고 어둑해지기 시작한 상황에서 나는 많이 불안했고, 여성이 안보이자 당황했다. 당시는 회사 초창기였고, 나는 20대 후반의 미혼으로 세상 경험이 많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 여성을 찾아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가입서류를 살펴보니 ‘목동 00빌라’라고 적혀있었다. 25년 전만 해도 가입서류가 지금과는 달리 허술한 편이었다. 동호수도 없었고, 전화도 회사 번호 뿐이었다.
무작정 길을 걷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골목골목을 다니고, 집마다 다니는 신문보급소가 생각난 것이다. 당시는 신문 보는 집들이 많아서 곳곳에 보급소가 있었다. 마침 석간 배달시간이라 한창 신문 정리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혹시 00빌라 아세요?”
바쁜 시간에 들이닥친 불청객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다행히도 그 빌라는 안다는 배달원이 있었다. 자신의 배달구역이라는 것이었다.
고맙게도 그 배달원은 자신의 자전거 뒤에 나를 태우고 00빌라까지 데려다줬다. 감사하다는 말을 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참 고맙고 미안하다.
00빌라는 2층 8세대 건물 2동이었다. 16세대 중에서 여성의 집을 찾는 문제가 생겼다. 빌라 입구 우편함을 보니 김씨성이 몇집 있어서 차례대로 초인종을 눌렀더니 세 번째 집에서 그 여성이 나왔다.
근처 커피숍으로 가서 설명을 들어보니 그 전날 소개받은 남성과 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여성이 “당했다”는 요지로 얘기를 했으니 나는 “빨리 그 사람을 잡으러 가자”고 했다.
그래서 112에 신고를 했고, 얼마 후 경찰관 2명이 커피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경찰관을 마주한 여성의 태도에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확실하게 신고할 의사도 없어보였다. 그래서 ‘다른 상황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경찰관들을 돌려보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하고 싶으신 건가요?”
“...........”
그래서 남성에게 전화를 했다.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순간적으로 경찰관 흉내를 냈다.
“여기 00경찰선데요, 성폭행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네...모든 걸 인정하겠습니다. 절차대로 조치하십시오..”
모든 걸 인정한다는 남성의 말을 듣자 ‘나쁜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고, 두 사람이 직접 해결하게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여성을 설득해서 그 남성을 우리가 있는 곳으로 불렀다.
“두 분이 관계를 하셨다는데, 책임지셔야 하는 부분 아닙니까?”
“00씨가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남성)
“00씨, 이 분을 신고할까요?”
“아뇨...”(여성)
“그럼 두 분이 대화로 풀어보시겠어요?”
“네...”(여성)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네, 오늘 고맙습니다.”(여성)
그리고 나는 그 자리를 떠났고, 그날 이후 여성에게서는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이것이 경찰관 사칭사건의 전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