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성친구가 필요하다.
80세, 아니 90세, 100세에도 이성친구는 필요하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의식이 있고, 걸어다닐 수 있는 힘만 있다면 옆에 누군가 있는 것은 삶에서 꼭 필요하다.
평생 순정파로 살아온 남성이 몇 년 전 사별해서 혼자 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서 여동생이 오빠의 만남을 주선하려고 했지만, 이 70대 남성은 “이 나이에 새로운 인연을 맺으면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두렵다”면서 거절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전 배우자에 대한 미안함, 자녀 눈치를 보는 등이다.
먼저 떠난 배우자에 대한 의리를 지키거나 체면을 차리는 일이 자신의 행복과 견줄만한 일인가. 그렇게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한가.
나이가 들어 혼자 되면 젊을 때와는 달리 왕성한 사회활동이나 대인관계가 힘들기 때문에 고립되고, 스스로를 폄하하고, 그러다가 몸과 마음이 망가지게 된다.
직장에서 정말 잘 나가던 남성이 은퇴 후 삶의 의욕을 잃고 놀라울 정도로 변해가는 모습도 봤고, 배우자 없이 살다가 한 순간에 급격하게 노쇠해버린 모습도 봤다. 이전의 건강하고 밝고 정력적이었던 모습을 기억하기에 너무나 안타까웠다.
반대로 이성친구를 가볍게 만나거나 데이트를 하거나 흔한 말로 엔조이하는 분들은 계속 젊음과 건강을 유지한다. 나는 고령의 삶을 경험하진 않았지만, 20대부터 90대를 수만명 봐왔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실제 이성친구를 만나지는 않았어도 만날까, 안만날까를 생각하고, 결혼정보회사나 데이팅업체에 가입할까 고민하거나 그런 고민 자체가 사람을 살아있게 만든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피가 끓고 세포가 살아 움직인다. 좋은 상대를 만나면 즐겁고, 설령 퇴짜를 맞아서 속상하면 그런 감정 또한 살아있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다.
인생에서 결혼은 몇 살까지 해야 하고, 교제는 몇 살까지 해야 한다는 규정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의 시선과 인식을 신경쓸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느낌에 충실한 것이 중요하다.
‘어차피 안될텐데..’, ‘이 나이에 새삼...’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이성친구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조차도 삶의 감동이 될 수 있다. 또 그 나이에 이성을 만나는 분들은 인생을 오래 살아 달관하고 초월하는 부분도 많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
큰 욕심이 없고, 서로 잘 이해하고, 그래서 헤어질 때도 쿨하다. 그러므로 지레 선을 긋고 자신을 옭아매거나 방어하지 말고, 이성교제 뿐 아니라 어떤 활동이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시도하는 것이 좋다.
손해볼 게 뭐가 있겠는가. 오히려 시간이 더 지나서 하지 못했던 때를 후회하는 일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