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변화시키는 철학 하는 발레
보리스 에이프만 피그말리온 효과’ ”(The Pygmalion Effect) 공연리뷰
오랜만에 찾아온 메모리얼
데이 황금연휴에 천사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나는 여행 대신에 발레의 세계에 흠뻑 빠져
끝없는 질문과 생각에 잠겨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비도 약간 오고 바람도 불어 춥게까지 느껴진
일요일 낮에 한 시간 반을 운전하고 시거스트롬에 도착하였다.
발레공연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공연장은 딴 세상이다. 빈자리 하나 없이 가득 메운 사람은 마치 할리우드 영화 시상식에 온 것 같은
선남선녀들 모습에 나도 덩달아 으쓱해진다. 뉴욕 타임즈가 오늘날 가장 성공한 러시아 안무가로 선정한 보리스 에이프만은
단순한 발레공연이 아니었다. 붉은 지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차이콥스키’
‘러시안 햄릿’ ‘돈키호테’ 안나카레리나등 대문호의 걸작이나 예술가의 삶을 춤으로 옮겨 인문학적 키워드를
가지고 우리에게 무엇인가 전하려는 철학적
문학적 메세지가 있다.
발사모 (발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강좌에서 이미 공부도 했고 “ 차이콥스키”를 작년에 보고 너무나 강렬한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아 이번 공연 티켙을 무작정 샀다.“피그말리온효과” 제목에 그리스 신화 내용이 나올 거라는 내 생각을 반전이라도 하듯 그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이해하기에는 나는 아직 역부족이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클래식 발레와 현대무용 ( 턴 아웃과 턴인) 동작의 절묘한
조화가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떻게 저런 동작을 만들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연구와 생각을 하고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 ” 하며 공연 내내 감탄을 하면서 잊혀지지 않게 비디오로 녹화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
어린시절 나는 무작정 발레를 좋아 했다. 공주 같은 화려한 뜌뜌의상과 발레리나의
멋진 동작에 홀딱 반했다. 그래서 더 높게 다리를 올리려고, 더 빨리
돌려고, 더 많이 점프하려고 무작정 따라하기에 바빴다. 발레를 좋아해서
선화예중고에 입학했고 선생님은 우리에게 발레공연을 무조건 보게 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을 토론하게 하였다.“
발레는 예술이다.
단순하게 발레를 위한 신체적 조건이 좋고 테크닉이 뛰어나다고 해서 훌륭한 무용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정서적인 발달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는
선생님의 교육에 내 생각은 점점 바뀌게 돠었다. 춤을 추며 나의 자아를
알고 즐거움을 찾게 됐다.
그때의 교육이 지금까지 나에게 공부하는 발레,
생각하는 발레, 철학하는 발레가 되어 811회가 넘는 무용칼럼을 지금까지 쓰고 있고 발사모강좌를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발레의 끈을 놓지않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발레는 즐거움이자 행복이며 나를 왕가의 귀족처럼 지성인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발사모 헬렌씨의 공연리뷰
Pathos is in the Air in Eifman’s New Unstrictly Ballroom: Eifman Ballet of St. Petersburg 에이프만 발레단의 신작 ‘피그말리온 효과’ – (May 25, 2019 Segerstrom Center for the Arts, Costa Mesa)
2017년도에 비운의 실제 발레리나의 인생을 모티브로한 발레 Red Giselle (1997)로 마지막 남가주공연을 한 에이프만 발레단이, 다시 2년만에 신작 ‘피그말리온 효과’의 미국에서 첫 데뷔를 시카고에서 마치고 서부 프리미어를 위해 코스타 메사의 Segerstrom Center for the Arts를 찾아왔다.
보리스 에이프만의 발레 중 가장 스타일적인면에서 클래식 발레에 가까운 ‘붉은 지젤’ 은 에이프만의 트레이드 마크인 캐릭터의 광기에 이르는 심리적 고통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룬 비극 스토리 발레였는데, 신작 ‘피그말리온 효과’는 일단 볼룸댄싱월드가 배경이라 발레리나들이 토슈즈를 신고나오지 않는다 (‘오네긴’처럼 현대무용적인 다른 에이프만의 작품들도 토슈즈를 신지는 않는다). 사전에 발표된 새 발레에 관한 기사/프리뷰를 보면서 화려하고 “캠프”한 느낌의 프로덕션 때문에, 아마도 에이프만이 요번에는 희극발레를 시도하여 기존의 스타일에 변화를 주려는가보다 했는데...도스토옙스키 신봉자인 에이프만은 끝내 해피엔딩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발레는 자신이 만든 조각상 Galatea ‘갈라테아’와 사랑에 빠지는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 이야기가 모티브인데, 에이프만은 이미 이전에 조각가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을 관계를 다룬 발레 ‘로댕’ (2011)에서 (골수팬으로서...얼떨결에 두번이나 관람...그러나 나의 favorite Eifman ballet 는 ‘오네긴’) 댄서들의 몸을 이용하여 강렬한 인간 조각상들의 이미지를 표현해낸적이 있다. 발레 ‘피그말리온 효과’는 그리스 신화보다는 이를 바탕으로 버나드 쇼가 지은 희곡 ‘피그말리온’과 쇼의 희곡을 각색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오드리 헵번 주연의 뮤지컬 영화 ‘My Fair Lady’에서 더 직접적 영향을 받은것같다. 더군다나 스토리라인이나 비주얼적인 면에서는 ‘물랑루즈’로 유명한 호주의 영화감독 Baz Luhrman의 Strictly Ballroom (1992)과 정말 많이 흡사하다. 주인공인 볼룸댄싱 챔피언이 파트너와의 갈등으로 촌스러운 초짜 여성 댄싱파트너를 맞이하면서 둘은 너무 뻔하게 거듭나는 연습으로 여자는 점점 우아해지고 정말로 사랑에 빠지는....영화는 언제나 해피엔딩이다.
에이프만은 본인의 발레에 주로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많이 사용하는 편인데, 아무래도 새 발레의 특성상 처음으로 왈츠킹 요한 스트라우스의 음악으로 안무를 하였다고 한다. 만일 classically trained 러시안 발레댄서들이 볼룸댄스계에 진출하면 어떤광경이 나올지 궁금하다면 ‘피그말리온 효과’를 보면 답이 나온다. 스탠다드 볼룸댄싱과 다르게 ‘발레틱’하다보니 스텝은 더 가볍고 에너지는 땅으로 꺼지지 않고 위로 올라간다.
Pasodoble, jive, tango 등의 사교댄스안무에 여성댄서들의 매우 발레스러운 거의 얼굴옆에까지 닿는 포인트한 발의 develope a la seconde라던지, 발레 pas de deux 에서나 있을법한 리프트 동작이 strictly ballroom dancing과 다른점이라고도 할수있겠다. 처음에 막이 오르면서 심플한 블랙톤의 아트데코디자인으로 꾸며진 무대 가운데 오리엔탈풍의 패널스크린을 경계선으로 기모노가운을 입고 네명의 하녀들의 시중을 받는 볼룸댄스세계의 슈퍼스타 남주인공 Leon, 그리고 알코홀릭 아버지 Holmes와 다이나믹 듀오를 이루어 관광객을 등쳐먹고 사는 톰보이 빈민가의 소녀 Gala의 아주 상반되는 세계와 일상이 그려진다. '변신’ 이전의 Gala는 구부린 등에 허우적되는 뽈드브라, 발도 플랙스된 상태에서 힙합댄스와 유사한 거칠고 과격한 동작이 몸에 밴 구제불능 케이스인데, 볼룸댄스 여신으로의 ‘transformation’ 일단계는 Gala가 풀어헤친 긴 검은머리에 밀리터리 자켓과 멜빵바지를 입고 Leon과의 티격태격 서스펜더를 이용해 마리오네트 인형 꼭두각시 댄스를 추며 시작된다. 그러다 중간 transformation 단계에서는 여성성을 찾아 슬립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올리고 나오기 시작한다.
에이프만은 극중 시종 카메라 세례를 터트리는 ugly tourist 들의 군무, 셀폰에 집착하는 Leon 의 모습에서 현대의 팝 컬쳐와 테크놀로지를 비웃는데 - Leon은 Gala 의 댄싱이 나아지지 않자, 황당하게 핑크드레스를 입은 Gala 에게 virtual reality headset 같이 생긴 디바이스를 머리에 쒸우고 마치 호두까끼인형 나오는 구제관절인형처럼 손목이 꺽여져있는 Gala의 등과 허리를 조종하여 펼치면서 진짜 ‘인형’으로 만들어 버린다.
혹독한 훈련을 거친 Gala는 Leon과 함께 Leon의 전 파트너이자 라이벌 Tea를 제치고 챔피언이 되어 마지막에는 번쩍이는 시퀸드레스를 입고 미스유니버스에 버금가는 커다란 왕관을 쟁취하지만 허탈해한다. 이제는 빈민가에도 볼룸댄싱월드에도 설 자리가 없어진 그녀는 (80년대 마돈나나 펑키 부르스터처럼 깃털목도리에 온갖 치장을하고 처음 Galatea 극장의 회전문을 넘어서던) 과거 자신의 환영을 보고 서글퍼한다.
Gala역을 맡은 Mariana Chebykina는 에이프만 댄서들 중 적당한 키와 변신이 가능한 귀여운 외모에 오드리 헵번처럼 ‘gamine’ 같은 quality가 있어서, 꽤 역할을 아주 잘해냈는데, 라이벌 Tea로 나온 Daria Reznik은 내가 본 그 많은 아름다운 금발의 러시안 발레리나 중에 정말 최고로 우아하고 아름다와서, 이런 발레리나가 Gala 역을 하기에는 불가능할듯 싶었다. 좌석이 무대에서 꽤 가까운 B석이였는데, 정말 에이프만 댄서들은 보고있으면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the intensity, sheer physicality....눈빛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러시아 고유의 theatrical tradition에서 나온 모방불가 아우라와 unleashed passion으로 춤을 추는데, 물론 에이프만 레파토리가 그런 스타일을 요구하는것이겠지만, 확실히 다른 러시아 발레단의 절제된 우아함과는 또 다른것 같다.
Leon역할의 Sergey Volobuev는 베테랑 에이프만 댄서인데, 이제 30대 초반이지만 살짝 톨스토이를 연상시키는 마스크의 상당한 노안으로, 25세때에 돈키호테 분장을 하고나온걸 보면 정말 할아버지같았는데, 분장없이 나이에 맞는역할을 하니 꽤 분위기있는 미남이였고, 오히려 이날보니 Oleg Markov 나 Oleg Gabyshev 보다 더 뛰어난 댄서인것 같았다. 코미디연기도 정말잘해서 Gala와 Leon이 술이 떡이 되어 들어오는 씬에서 술취한 연기를 정말 레알하게 잘하였다. 쇼의 ‘피그말리온’의 히긴스교수 포지션인 Leon과 콤비인 피커링 대령 포지션에는 그냥 ‘coach’ 라는 조연역할이 등장했는데, 4번에 걸친 쇼에서 코치역을 맡은 Igor Subbotin은 차세대 에이프만 수석으로 2017년 Red Giselle에서 섹시한 비밀경찰로 나와서 관객들에게 엄청난 갈채를 받았었다. 여기선 안경을 쓰고 볼룸댄스특유의 살짝오버하는 코믹캐릭터로 나와서 못알아볼뻔했다. Gala의 아버지 Holmes도 어느날 하얀날개에 가발을 쓴 식스팩이있는 천사의 방문이후, 술과 여자를 끊고 금욕의 아이콘으로 성장하려는 ‘변신’을 꾀하는 코믹캐릭터로 나오며, Leon의 욕구불만 가정부와 3명의 하녀들은 심술맞은 신데렐라 언니캐릭터와 비슷하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넘쳐나는 슬랩스틱과 ‘캠프’한 스타일로 에이프만 발레중에선 제일 밝고경쾌하였으며, 전 출연진이 코믹한 앙코르댄스까지 선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에이프만의 모든발레에서 깊게 묻어나는 pathos 때문에 전체적인 overtone 은 시종일관 어딘가 슬펐다. Nobody does it better...than the Russians. 왜 칼리 사이먼의 오래된 007 주제가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