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코리아 US Life

존 셔터의 과거
Artchocolate | 조회 3,538 | 02.29.2024
<존 셔터의 과거>

이쯤에서 잠깐, 우리는 존 셔터[John Sutter]의 과거행적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고 가기로 하자.

1803년 2월 23일, 셔터는 독일과 스위스의 국경 마을에서 인쇄업자인 스위스계 아버지와 독일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셔터가 10세 되는 해에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가 인근 지역에 잠시 주둔했었다는 이유로 

나폴레옹을 존경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빛나고 멋져보이는 장교들의 복장에 관심을 갖었다. 

스위스에서 학교를 마친 셔터는 책방에서 견습공으로 일을 하던 당시에 나폴레옹의 전술에 관한 서적들을 즐겨 읽었으며

그 당시에 만난 안나(Anna)라는 부유한 집안의 무남독녀와 결혼을 하여 다섯 자녀를 둔 가족의 가장으로 안정된 삶을 꾸려나갔다.

그는 장모의 도움으로 의류 부속 상점을 열었으나 천성적인 나태함과 경험 부족으로 항상 적자 운영을 하였다. 

그렇게 적자 운영을 하면서도  고급 의상과 제품으로 

몸치장하며 과소비를 지속하는 바람에, 장모의 경제 원조가 끊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아가며 가게를 더 크게 확장하였으나,,,,, 

결국은 파산을 하게 되고,  더불어 많은 부채를 지게 되었다. 

7월 12일, 스위스 법원은 그에게 출두 명령과 함께 체포령을 발동 하였다, 

그러자 셔터는 프랑스 여권으로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도피하였다.

6개월 후에 그의 장모가 사망하고, 안나의 가족들은 빚 독촉에 시달리며 살아야만 했다. 

결국, 안나와 어린 자녀들은 전 재산을 모두 잃게 되고 외할아버지 집에 얹혀 사는 지경이 되었다.

한 편, 뉴욕에 도착한 셔터는 스위스에 있을 때부터 기회의 땅이며 풍부한 자원의 땅인 아메리카 서부 지역의 삶을 동경하였던 만큼 서부지역에 터전을 마련하기로 했다.  

유럽의 법은 물론 미국의 법조차도 통하지 않는다는, 신조차  포기한 땅이라는 그런 무법 천지.... 그곳이야말로 내가 살아 갈 땅이다.

먼저, 셔터는 독일계 이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프러시아의 대령 출신의 장교와 오랫동안 룸메이트를 하였는데 

그의 군대 무용담을  자주 즐겨  듣더니 어느날부터인가  장교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31살이 되자, 셔터는 그때부터 스위스 군대의 현역 대령의 신분으로 위장하며 살기 시작했다.

그는 그의 새로운 명칭과 함께 장사할 상품을 구입하여 산타페로 장사하러 가는 상인 행렬에 끼어들었다. 

싼타페에 도착한 후, 그의 상품을 7 마리의 당나귀와 맞교환 하였고 미주리주의 세인트 루이스로 돌아와서 7마리의 당나귀를 커다란 이익을 남기고 팔았다. 

그는 첫번 째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은 후, 두번 째 장사 행렬을 계획하였다. 

초창기의 그의 사업은 합법적으로 시작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요령이 생기자 멕시칸 작물을 취급하기 시작했으며, 

비합법적으로 아파치 인디언들의 말들을 헐값으로 구입하여 큰 이익을 취하기도 하였다. 

그가 돈을 좀 모으자 산타페 인근의 오래된 광산을 구입하여 금을 채굴하는 한 편, 말과 당나귀의 교역도 지속하였다. 

1836년, 상품을 가득실은 새로운 이민자 독일인 마차들이 도착하면, 셔터는 그 독일인들을 속여서 

모든 상품을 리오 그란데 강 이남의 지역에 팔게 한 후, 자신이 돈을 챙겨서 달아나는 수법을 쓰기도 했다. 

독일인 커뮤니티에서 사기범으로 그를 잡아 돈을 회수하려고 했지만 그는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1년 후인 1837년, 그는 지금의 캔자스 시티에 나타났다가  캘리포니아에서는 정착하는 모든이들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나눠 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이 지역에서 숨어 지내느니 차라리, 캘리포니아로 가는게 낫겠다라고  생각하고는 로키 산맥을 향한 모피 사냥팀에 합류했다. 

이 팀의 소요되는 모든 경비는 회사에서 부담해 줄뿐만 아니라 족제비 사냥이 한창인 로키 산맥을 목적지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셔터에게는 둘도 없는 기회였다.

마차 행렬은 그린리버(Green River)지금의 아이다호 강에 도착하였다. 

이 곳은 모피회사의 전진 기지로 인디언들이 획득한 족제비 가죽을 구입하고 물자를 공급해 주는 곳이기도 했다.

<계 속>

DISCLAIMERS: 이 글은 각 칼럼니스트가 직접 작성한 글로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작성자에게 있으며, 이 내용을 본 후 결정한 판단에 대한 책임은 게시물을 본 이용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라디오코리아는 이 글에 대한 내용을 보증하지 않으며, 이 정보를 사용하여 발생하는 결과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라디오코리아의 모든 게시물에 대해 게시자 동의없이 게시물의 전부 또는 일부를 수정 · 복제 · 배포 · 전송 등의 행위는 게시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원칙적으로 금합니다. 이를 무시하고 무단으로 수정 · 복제 · 배포 · 전송하는 경우 저작재산권 침해의 이유로 법적조치를 통해 민, 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This column is written by the columnist, and the author is responsible for all its contents. The user is responsible for the judgment made after viewing the contents. Radio Korea does not endorse the contents of this article and assumes no responsibility for the consequences of using this information. In principle, all posts in Radio Korea are prohibited from modifying, copying, distributing, and transmitting all or part of the posts without the consent of the publisher. Any modification, duplication, distribution, or transmission without prior permission can subject you to civil and criminal liability.
목록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맨끝
DISCLAIMER : 이 칼럼의 글은 해당 칼럼니스트가 직접 작성한 글로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작성자에게 있으며, 이 내용을 본 후 결정한 판단에 대한 책임은 게시물을 본 이용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라디오코리아는 이 글에 대한 내용을 보증하지 않으며, 이 정보를 사용하여 발생하는 결과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