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캘리포니아는 바야흐로 멕시코 시대로 접어들게 되는데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중남미 대륙의 라틴 아메리카 독립에 대해서 잠시 들여다 보고 가기로 하자.
당시 스페인 제국의 아메리카 대룩에는 멕시코 시티를 중심으로 한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국과 잉카제국을 중심으로 한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국 그리고 라플라타 지역의 리오델 라 플라타 부왕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누에바 에스파냐의 경우 멕시코 북쪽의 땅(지금의 켈리포니아, 뉴멕시코, 콜로라도, 텍사스, 네바다, 아리조나)를 포함한 거대한 대룩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아메리카가 발견된 이래 수 세기가 흐른 18세기 말, 라틴 아메리카에는 이미Criollo[크리오요]라는 계층이 두껍게 생성되어 있었는데 이는 ‘아메리카 태생의 백인’들을 일컫는 말로, 이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태어나 식민지로 이주한Peninsulares[뻬닌술라레스; 반도출신이라는 뜻] 들과 차별대우를 받게 되면서 불만이 증폭하기 시작했다.
스페인 국왕은 스페인 태생의 이주자 만을 편애하여 크리오요에게는 관직과 상업활동에 큰 제약을 가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크리오요들이 반감을 사면서 19세기 초부터 남미를 중심으로 혁명이 일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마침,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략하여 스페인 국왕이 폐위되자 이들 크리오요들은 중남미 곳곳에서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며 전쟁을 일으켰다.
아르헨티나 지역의 San Martin[산 마르틴] 장군을 비롯하여 베네수엘라 지역의 Simon Bolivar[시몬 볼리바르] 같은 영웅들과 함께 크리오요들이 단합하여 스페인 군에 대항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런 동기에 의해 부에노스 아이레스 훈타 [Junta de Buenos Aires] 는 1810년부터 라플라타 강 연합주국(Provincias Unidas del Rio de la Plata)이라는 명칭으로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1810년 5월에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는데,
그 후 크고 작은 수많은 독립전쟁을 치른 끝에 1816년7월9일 Tucuman [뚜꾸만; 아르헨티나 북쪽의 도시] 회의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수도로 하는 중앙 집권적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함으로써 비로소 아르헨티나의 독립과 통일이 달성되었다.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의 중미 지역에서도1811년, 해방자(Libertador)인 Simon Bolivar[시몬 볼리바르]에 의해 베네수엘라, 키토, 콜롬비아, 볼리비아 등지에서도 해방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한 편, 멕시코의 경우, 에스파냐로부터의 독립은 1810년 9월 16일 혁명적 애국자인 Miguel Idalgo[미겔 이달고]신부의 유명한 ‘돌로레스의 부르짖음(Grito de Dolores)’을 계기로 기운이 일기 시작하였지만, 별로 커다란 진전이 없다가
1821년 8월 24일, Cordoba[코르도바 협정]에 의해 마침내 스페인으로부터 멕시코의 독립을 인정받는 조약 문서(Tratados de Cordoba)에 서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9월 27일에 독립군이 멕시코 시티로 입성하면서 누에바 에스파냐 총독부는 해체되고 다음 날 멕시코 제국이 선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