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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서부진출 – 인디언 이야기
Artchocolate | 조회 6,060 | 10.09.2019

미국은 날로 커지고 있었다유럽에서 건너온 새로운 이민자들은 도로도 없고 상점도 없고 병원도 없는 미개한 땅인 루이지애나 지역 쪽에서 사는 것을 원치 않았다그들은 동부 문명의 도시 근처와 강 주변에 정착하기를 원했다.

 

그러나그런 곳에 살고 있는 인디언들은 그들의 조상이 일구어 놓은 땅을 절대로 팔려고 들지 않았다.

 

1828년 뻣뻣하고 별난 성격의 소유자라는 뜻의 장작용 나무 Old Hickory (올드 히커리)라는 별명을 갖은 서민 출신의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Indian Removal Act.[인디안 추방 법]을 제정 발표 했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 내의 특정 지역에 인디언 보호 구역을 만들어 모든 인디언들은 고향을 버리고 이 지역으로 옮겨가 살 것을 법으로 정한 것이다.

 

 당시의 미 정부가 지정한 곳은 오클라호마로 당시의 오클라호마는 미국 영토의 가장 끝자락에 위치한 척박한 오지의 땅이었다.

 

미영 전쟁을 승리로 이끈 뉴올리언스의 영웅이 미국의 역사 가운데 가장 수치스러웠던 인디언 토벌에 앞장 선 대통령이 되었다.

 

인디언 보호구역 (Indian Reservation) 을 정해 인디언을 황무지로 몰아내어 수십만의 인디언들이 피를 토하며 죽어간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을 걷게 한 장본인이다.

 

당시조지아 주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는 칙소 족촉토 족세미놀 족체로키 족크리크 족등 문명을 받아들인 다섯의 개명 부족[Five Civilized Tribes]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백인들과 똑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었으며 그들의 자녀들도 백인 선교사가 만든 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며 영어 식 이름을 갖고 있었다.

 

특히 조지아 주에 살던 체로키 족의 경우에는 상점과 교회가 있는 그들만의 작은 도시에서 살았으며 그들의 언어와 영어가 나란히 쓰인 신문을 발행했으며 백인과 결혼하여 자식을 둔 가족도 있었다.

 

안정적이고 평화롭게 살던 이들에게 서부의 인디언 보호 구역으로의 이주란 그야말로 ‘청천 벽력’ 이었던 것이다.

 

그 중에 미국 정부와 맞선다는 것이 무모함을 질 알고 있는 칙소 족이 제일 먼저 고향을 등졌으며 9개월 후인 한 겨울에 촉도 족도 출발했다.

 

미 정부는 필요한 식량과 옷을 살 돈을 주겠다고 약속 했지만 이행되지 않아 나중에 그들은 눈밭을 맨발로 걸어야만 했었다.

 

한 편떠날 수 없다고 버티던 크리크 족은 미국 병사들이 마을을 쳐들어가서 사슬에 묶어 강제 이주 시키는 바람에 입은 옷 그대로 출발했다.

 

그들은 발목의 사슬로 인해 제대로 걷지 못해 350명 가량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사망했다고 한다.

 

지금의 플로리다 주에 거주하던 세미놀 족은 무기를 들고 대항했으며 미군이 이들을 플로리다에서 쫓아내기까지 7년이란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한 편체로키 족은 법정 소송을 벌이면서까지 조상의 땅을 떠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였다.

 

8년이나 끌은 긴 소송이었지만 조지아 총독은 소송이 끝나기도 전에 체로키 인디언의 땅을 쪼개서 복권에 당첨된 이주 희망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군인들이 인디언의 집을 부수고 들어가 인디언들을 끌어 내어내는 바람에 이들은 짐도 챙기지 못한 채 임시 수용소로 끌려 갔다.

 

18306월의 어느 날 결국체로키 족도 오클라호마의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출발 했다. 1 3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그 길을 가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

겨울이 오고 눈이 내려도 그들은 담요만 걸친 채 모닥불 앞에 쪼그려 앉아서 잠을 청했다이를 지켜 본 한 미군 병사는 이렇게 당시를 되뇌었다.

 

“그들은 모닥불에 둘러 앉아서 졸고 있었다다음날 아침 출발 신호가 떨어졌으나 그 중 몇몇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다밤 사이에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다그들은 아침에 밤 사이에 죽은 동료를 묻어주고 다시 길을 떠났다그들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십 수개의 무덤이 생겨나곤 하였다.

 

1 4천 여명이 1500킬로미터나 되는 눈물의 길을 떠났으나 중간에 질병과 굶주림 탈진으로 인하여 대부분이 생명을 잃고 단 1200여명만이 살아서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체로키 족을 인솔한 인디언 토벌대장인 필립 셰리던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본 인디언 중에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뿐이었다.

 

모험과 도전의 정신으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미국의 프론티어 정신은 드넓은 서부의 대평원에 힘차게 펼쳐졌지만 그들이 타고 간 마차 바퀴자국에는 아직도 인디언의 피눈물과 한이 서려있다.

 

미영 전쟁을 승리로 이끈 뉴올리언스의 영웅이었던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미국의 역사 가운데 가장 수치스러웠던 인디언 토벌에 앞장 선 대통령이었음을 오늘날미 역사는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

 

 

두 편의 유튜브 동영상은 지금의 인디언 보호구역의 참 실상과 인디언 보호구역을 노래한 폴 레베와 라이더스의 노래 Indian Reservation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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