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러시아인들이 캘리포니아의 일부를 무단 점거하여 요새를 만들고 살았음을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오늘은 그 내용을 살펴 보기로 하자.
맨 처음, 유럽 러시아 인들의 동북 방면의 시베리아 진출은 주로 모피 사냥꾼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일찍이 1579-1639 사이에 Russian 개척자들인 그들은 질 좋은 여우, 족제비, 백곰, 밍크 등의 모피를 얻기 위해 러시아의 동쪽 방면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는데 마침내 시베리아를 거쳐 북 태평양 해안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다음의 내용은 러시아인들의 아메리카 대륙의 일지를 참고로 기록한 내용들이다.
알라스카의 역사가 세계에 선을 보인 것은 1714년 러시아의 피터 대제 1세의 명령을 받은 덴마크 태생의 베링(Bering) 해군 대좌가 시베리아의 동쪽 끝의 해협을 발견한 후, 1728년까지 Vitus Bering 과 Alexei Chirikov가 최초로 베링 해협의 일대를 탐험하였다.
1727년 시베리아의 캄차카 반도에서 배 두 척을 건조하여 알류산 열도를 따라 항해를 하던 그들은 폭풍을 피해 한 육지에 상륙을 했는데 그곳이 바로 ‘알라스카’ 였다.
그 후 피터 대제 1세의 사후 그의 딸인 캐더린 대제(Cartherine the Great)가 그 유업을 계승하여 아시아 대륙과 북미대륙이 분리되어 있음을 확인하였고
1764년부터는 알라스카 지역의 탐험과 함께 모피 생산업자들이 대거 이주하기 시작하여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시장에 팔 질 좋은 모피들을 싼값에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이곳에는 에스키모, 알류트 등의 인디언 부족이 살고 있었는데 수 천년 전부터 aleu-tian 열도에 살고 있는 alult족이 알라스카를 Alyeska(위대한 땅)으로 부른 것이 유래되어 오늘날 이 대륙의 이름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 후, 러시아 모피 사냥꾼들이 시베리아, 알류우샨 열도 등을 거쳐 알라스카의 서남부 연안 지대로 상륙을 시작으로 러시아 사냥꾼들의 본거지가 되었음은 물론, 신상품으로 바다 동물의 모피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당시, 알라스카에서 모스크바로 들어간 알라스카산 모피들은 최상품으로 궁정 내에서 큰 환대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1778년, 영국인 제임스 쿡 선장이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향하는 항로를 찾다가 닻을 내리기 좋은 곳을 발견하고 (good Anchorage)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오늘날 이곳이 앵커리지 도시가 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러시아는 즉각 해군을 파견. 주둔시키면서 알라스카를 러시아화 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1784년 러시아 정부는 알라스카의 코디액 섬(Kodika)에 첫 식민지를 공표하였고 첫 정착민들을 이주시켰다.
그 후, 1799년에는 알렉산더 바라노프(Alexander Baranof)가 동남부에 위치한 시트카(Sitka)부근에 성을 쌓고 러시아 황제기를 세움으로써 알라스카를 러시아령임을 세계에 공표하였던 것이다.
러시아의 식민지가 된 알라스카는 원래 바다표범, 바다 코끼리 물개들의 서식지였는데 당시 모피산업이 최고로 발달했던 러시아는 알라스카에 이 같은 전진 기지를 만들었으며 코디액 섬이며 동남부의 시트카(Sitka)를 거점으로 바다 동물 사냥터를 확장하여 멀리 캘리포니아 해역까지 교역을 넓혀가기 시작하였다.
당시, 1769년, 스페인은 캘리포니아에 미션 팀과 이주민을 정착시킴으로 캘리포니아가 스페인 영토임을 만 천하에 공표하였던 것이다.
한편, 중국과의 모피 무역이 성사되면서 호경기를 맞이한 러시아는1799년 Aleksandr Baranov를 대표자로 하는 Rusian American Fur Company 라는 회사를 알라스카 Novo Archangelsk에 설립하며 호시탐탐 아메리카의 남하 정책을 엿보기 시작했다.
(위의 사진은 현대에 복원된 로스 요새 내부의 ‘동방정 교회’ 의 모습이다.
로스 요새(Fort Ross)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소노마 군에 세워진 러시아 양식의 요새로, 1812년에 러시아 제국이 러시아령 아메리카를 지배하는 와중에 건설하였다. 대략 샌프란시스코로부터 60 킬로(40마일) 북쪽 방면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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