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캘리포니아 미션의 선두 주자였던 Junipero Serra 신부는 1782년, 카멜 성당 건물을 완성하였는데 같은 해 Serra 신부의 오랜 벗이며 엘 카미노 레알 탐험에서 모든 기록을 담당했던 Juan Crespi 신부[로스 앤젤레스라는 이름을 최초로 만든 신부]가 숨을 거두자 친구를 잃은 슬픔에 세라 신부는 한동안 깊은 시름에 빠지기도 했다.
그 후, 1783년에 Serra 신부는 캘리포니아 전 미션 지역을 돌아다니며 미국의 독립 전쟁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였는데 그는 어려운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37불이라는 기금을 마련하여 George Washington 장군에게 전달하였다.
그로 인해 세라 신부는 George Washington 장군으로부터 캘리포니아의 시조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또 한, 그의 이러한 활동 기록은 훗날, 멕시코 시절 파괴되고 방치되었던 캘리포니아의 최초의 미션들이 미국의 정부 시절에는 대부분 복원되는 기쁨을 맞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이듬해인 1784년, 주니페라 세라 신부는 캘리포니아를 위해 평생을 바친 후, 그의 나이 71세를 끝으로 8월 28일, Mission Carmel의 그의 사무실에서 생을 마감하였는데 그의 시신은 Mission San Carlos Borromeo 묘지에 안착되었다.
그가 마지막 눈을 감을 때 그의 제자인 Francisco Palou에게 건축중인 카멜 석조 건물이 완성되면 꼭 자신의 시신을 이전 시켜달라고 유언하였으므로 1797년, 석조 건물이 완성되자 Francisco Palou신부는 유언대로 주니페로 세라 신부의 시신을 이장하였다.
그 후, 1803년 Francisco Palou신부도 운명이 다하자 Junipero Serra 신부와 Juan Crespi 신부 옆에 나란히 묻히게 되어 캘리포니아의 최초 미션을 주도했던 신부들의 운명은 이처럼 마감되었다.
세라 신부의 캘리포니아 미션 팀은 1784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샌디에고’부터 샌프란시스코의 ‘소노마’까지 23채의 성당을 건설하였다.
그 중, 1781년 화재로 인하여 2채가 손실되어 현재까지 21채가 남아있는 셈이다.
<사진: Junipero Serra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