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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카미노 레알 - Mission San Juan Capistrano 이야기
Artchocolate | 조회 6,032 | 04.05.2016
1769년7월 23일, ‘산 후안 까삐스뜨라노’라고 지은 강을 따라 내륙쪽으로 향하던 탐험대는 물줄기가 둘로 갈라지는 지역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인디언 부락을 하나 발견하였다.

 

 Crespi[크레스피] 신부는 그 지역에 겨자씨를 뿌리고 인디언 부족들에게는 San Juan Capistrano 강에서 이름을 딴 Juaneño [후아네뇨; 성자 요한의 주민이라는 뜻] 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 지역이 오늘날에는 74번 Ortega HWY가 지나는 곳이다)

 

당시, 탐험 대원들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후세에 남겼다.

 

“그들의 부락은 Kiichas [키이차스] 라고 불리는 이동식 가옥으로, 이는 쉽게 구부러지는 버드나무의 가지를 이용하여 프레임을 만들고 갈대를 엮어서 벽과 지붕을 완성하여 만들어졌다.

프레임은 땅속에 2인치정도 박아 놓아 기둥역활도 겸했는데 주위에 돌들을 괴어서 지지대 보강을 하였다.

지붕 한 복판에는 환기 및 조명을 위해서 구멍을 뚫어 놓았는데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워지면 동물의 가죽으로 지붕과 출입구를 막아 놓는다고 하며

 

혹, 이동 시에는 불을 질러Kiichas[키이차스]를 연소시키고 필요한 가재 도구만 챙겨 이동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인디안들의 이동식 거주 부락에 1776년 유럽풍의 건물인 미션 산 후안 까피스트라노 (Mission San Juan Capistrano)가 오렌지 카운티 에서는 유일하게 세워졌는데,

 

이는 El Camino Real[엘 카미노 레알]의 21개의 미션 중 7번째로 지어진 건축물이 되었다.

 

당시 이 성당의 건물을 지은 후니페라 신부는 진흙과 잔디풀, 모래, 돌을 섞어서 반죽한 뒤에 틀에 넣어 벽돌모양을 만든 후, 햇빛에 건조시킨 Adobe[아도베] 라는 흙벽돌로 지었다.

 

그 후,  1812년 12월 8일, 주일 아침 미사가 시작되던 시각에 남 캘리포니아를 강타한 7도 지진으로 그만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당시 미사를 보던 40명의 인디언과 종을 울리던 두 명의 인디언 소년을 포함 42명의 신도들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후안 까피스트라노 미션은 유난히도 많은 인디언을 크리스찬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케이스에 속하는데



1790년에는 700여명의 세례자 인디언이 생겼으며 6년 후에는 1000여명 이상의 인디언들이 크리스천으로 개종하였다.

 

계속된 인디언 부족들의 개종과 더불어 교회의 토지도 늘어나면서 캘리포니아 포도의 상징인 미션 그레이프 (Mission grape)가 처음으로 심어졌고,

 

1783년에 캘리포니아 최초의 와인이 이곳에서 생산되면서 포도농장 와인 양조장이 형성된 곳이기도 하다.

 

그 후, 이 지역은 산기슭에서 포도재배와 목축업이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농업지대로 발전하면서 범위를 넓혀나갔다.

 

먹거리가 풍부해지자 제비들이 떼지어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루었는데 지금도 매년 4월에는 제비축제 (Fiesta de las Golondrinas) 가 열리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산 후안 까피스트라노 미션도 1833년, 멕시코 정부가

출범하면서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나눠주는 정책으로 말미암아 그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당시 교회가 소유한 토지는 오렌지카운티 전체에 해당되는 상당의 크기였

는데 그 교회 토지가 20개로 분할되어 목장으로 만들어지면서 교회도 해체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850년 캘리포니아가 미국의 주가 된 이후, 제16대 대통령 에브레함

링컨이 미션 건물을 카톨릭 교회에 돌려주는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44에이커의 토지와 건물이 교회에 반환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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