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캘리포니아를 탐험한 사람이 포르투갈 태생의 Juan Rodriguez Cabrillo[후안 로드리게스 카브리요]인데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봤으리라는 이름이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Cabrillo에 대해서 살펴 보기로 하자
현재, 엘 에이 카운티 내에는 Torrance 지역의 Western과Crenshaw사이에 있는Cabrillo에비뉴를 비롯하여 산페드로 항의 해양박물관, 샌디에고의 Cabrillo National Monument [카브리요 국립공원] 등 크고 작은 20여 지역의 이름으로 남아있는 Cabrillo는 캘리포니아 해안가를 처음으로 탐험했던Juan Rodriguez Cabrillo[후안 로드리게스 카브리요]의 이름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카브리요는1540년, 멕시코의 나비닫(크리스마스라는 뜻) 항구 마을에서 3년여 기간에 걸쳐 캘리포니아 탐험을 위한 세 척의 배를 건조했다.
당시, 카브리요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미지 세계인 북태평양 지역을 탐험하여, 지도를 작성하고 그와 함께 황금이 널려있다는 전설 속의 캘리포니아 섬 (11-스페니쉬 교육 칼럼 - 캘리포니아 어원과 유래 참조) 을 확인해 보고, 동시에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수로를 찾아 보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200톤 크기의 주력함 산 살바도르(San Salvador)는 ‘성인 구세주’라는 뜻으로 크고 작은 사각 돛이 세 개나 달려 있고 선체는 총35 미터, 갑판은 20 미터로 50명 이상을 태울 수 있는 당시 대형 급의 범선이었고 100톤 급의 전투함 라 빅토리아(La Victoria)는 ‘승리’라는 뜻으로 역시 크고 작은 사각 돛이 세 개씩 달려 있고 여섯 구의 대포도 장착되어있었다. 선체는 15미터에 대략 30명 정도 승선 할 수 있는 중형 급의 범선이었다. 그리고 보급선인 산 미겔 (San Miguel)은 ‘성자 미겔’ 이라는 뜻으로 80톤 급의 크기로 음료수를 비롯한 각종 물자가 적재되어 있었다.
순조로운 항해로 하루에 15-20마일 항해를 하던 중 카브리요 함대가 처음으로 닻을 내린 곳은 천연적인 요새 항만인 지금의 San Diego [산디에고] 지역이었다. 카브리요는 그의 일지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겼다.
- 1542년 9월 28일 -
우리는 배를 정박 할 수 있는 천연적인 항만을 발견하여 잠시 머물기로 했다. 우리는 멕시코에서 데려온 인디언의 통역으로 바닷가 마을 원주민과 대화를 시도 하였다.
우리가 만난 이 지역의 원주민들은 초여름에는 해변에 임시 움막을 짓고 물고기를 잡고 조개를 캐며 생활을 하였는데 그들은 해변에서 살다가 여름이 끝날 즈음에는 말린 생선과 전복을 모아 내륙에 있는 마을로 돌아 간다고 했다.
팔라(PALA) 족이라고 칭하는 그들의 생활상을 정리하자면 대충 이렇다.
산맥이 있는 내륙 쪽에 그들의 마을이 있다. 그들은 그 곳에서 도토리를 채취하여 모아둔다. 모아둔 도토리는 물에 푹 담궜다가 널따란 바위에 널어 햇빛에 말린다. 그 후, 바위 한 쪽에 있는 구멍에 도토리를 넣고 차 돌멩이로 빻아 가루를 만든 다음, 부대에 담아 저장한다고 했다.
도토리 가루와 전복과 물고기, 그리고 사냥에서 잡아온 노루나 사슴 고기를 먹으며 겨울을 지낸다. 봄이 되어 음식이 모자라면 나무의 뿌리를 캐먹으며 견디다가 여름이 올 즈음이면 다시 해변가로 이동한다고 했다.
원주민들은 대체로 누르스름한 피부 빛깔에 넓적하고 둥그스름한 얼굴 형태를 지녔으며 대체적으로 온순한 편이며 체격은 단단했고 어깨까지 늘어뜨린 검은 머리는 억세었다. 우리는 팔라 족장의 안내로 마을의 이곳 저곳을 구경하고 다녔다. 그러나 그들의 장식품은 물론 그 어디에서도 황금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보급 선인 산 미겔 호가 최초로 발견한 지역이었기에 나는 그 천연적인 항만의 이름을 산 미겔이라고 지었다.
1542년 9월 28일, 카브리요가 최초로 발견한 천연적인 요새 항인 San Miguel[산 미겔]항은 바로 오늘날의San Diego[산디에고]시의 Point Loma[포인트 로마] 지역이었다. (다음 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