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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니쉬 교육칼럼 - 캔자스 주의 탐험 이야기
Artchocolate | 조회 7,641 | 09.05.2014

1519년 에르낭 코르테스[Hernan Cortes]가, 아즈텍을 점령하고 1533년 피사로가 잉카제국을 점령하면서 황금 시대로 접어들게 되자 콜럼버스의 우선적 목표였던 인도 항로 개척은 부차적 목표로 전락 되어 버리고 말았다.


당시, 아메리카를 탐험하던 유럽인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신대륙에서 황금을 얻는 일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코르테스가 점령한 멕시코 시티는 스페인의 전진 기지가 되어 엘도라도 (El dorado; 황금의 도시라는 스페인어)를 찾는 젊은이들이 줄지어 모여들기 시작했다. 


당시 멕시코 부왕 안토니오 멘도사는 북아메리카 지역의 전설적인 엘도라도 시볼라의 일곱개의 황금도시(El Dorado de Siete Cíbola)에 관심을 갖고 부하인 마르코스 데 니사 (Marcos de Niza)를 북쪽으로 파견하여 마침내, 시볼라의 일곱 개의 황금도시(El Dorado de Siete Cíbola)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는데 성공하였다.


니사의 보고에 의하면 이 도시는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났으며 그들의 삶은 풍요로웠노라고 하였다. 당시 니사가 발견했다는 황금도시는 오늘날의 뉴멕시코 주의 인디언 주니족의 거주지 마을이었다.


이에 부왕 안토니오 멘도사는 즉각 코로나도에게 명하여 탐험대를 조직하게 하였는데 1540년 2월 23일, 탐험 준비를 마친Francisco Vazquez de Coronado는 잉카제국의 황금보다 더 많은 보화를 얻을 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충만하여 니사를 가이드로 앞 세워 북미 대륙의 탐험 지를 향해 출발하였다.  


Francisco de Coronado가 이끈 탐험대는 340명의 스페인 군인들과 300여명의 인디언들, 1000여필의 말, 그리고1000여명의 노예들과 6문의 대포와 함께 수많은 양과 돼지 등으로 구성된 주력부대와 Hernando de Alarcon[에르난도 데 알라르콘]이 지휘하는 보급을 담당하는 2척의 배로 구성되었는데 이2척의 배는 1540년 8월 26일 캘리포니아 만을 거슬러 첫 항해를 시작하였다.


1540년 2월 코로나도가 지휘하던 육로 탐험대의 주력부대는 쿨리아칸 [Culiacan]을 출발하여 멕시코 서해안 지역을 탐험하면서 북쪽으로 나아갔다.


그곳에서 소규모로 분리된 한 탐험대가 가이드인 마르코스 데 니사 (Marcos de Niza)를 따라서 다시 북쪽으로 이동하여 1540년 7월 7일, 지금의 뉴 멕시코 주에서 당시 주니 족이 사는 전설 속의 시볼라의 일곱 개의 황금도시(El Dorado de Siete Cíbola)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당시 주니 족은 높은 언덕 위에 4,5층의 누런 흙 벽돌로 쌓은 건물들을 짓고 그 속에서 살았는데 1000여 개의 방을 갖은 큰집도 있었다고 한다. 태양에 반사된 이 누런 흙 벽돌집들은 마치 황금으로 지은 집처럼 휘황찬란하게 빛났던 것인데 이를 발견한 코로나도 부대는 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도시를 점령할 수가 있었다. 코로나도 자신도 이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면서까지 힘들게 점령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점령한 도시 안에는 황금은커녕 누런 흙 벽돌만이 나뒹굴 뿐이었다. (이 지역은 오늘날 뉴 멕시코 주 Zuni-Cibola Complex라는 이름으로 1974년, 미 합중국 역사 보존 지역으로 지정 되었다.)


한편, 코로나도 탐험대의 일부를 이끌었던 Garcia Lopez De Cardenas [가르시아 로페스 데 카르데나스]는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현재의 애리조나 지역인 콜로라도 강의 그랜드캐니언[원래의 이름은 스페인어로Gran Cañon;(그란 카논; 위대한 골짜기)이었으나 후에 영어발음으로 바뀜]을 발견하였다. 탐험대들은 겨울을 지내기 위해 현재의 산타페(Santa Fe: 성 신앙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근처에 있는 리오그란데 (Rio Grande; 커다란 강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에 다시 집결하였다.


당시에는 수많은 유럽의 젊은이들이 일확 천금의 꿈을 안고 엘도라도(황금의 도시)를 찾아 신대륙에 발을 들여 놓았던 시절이었으며 또한 수많은 전설과 신화 그리고 탐험가들의 허풍스런 미담에 의해 키워진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포로로 잡은 한 인디언에 의해 끼비라 [Quivira] 라고 불리는 북쪽 지역의 또 다른 엘도라도 왕국의 존재 설이 제보되었다. 희망을 잃어가고 있던 코로나도에게는 귀가 솔깃한 제보였다.


1541년 4월 23일, 코로나도는 지금의 캔자스 지역인 끼비라[Quivira]라는 엘도라도를 찾아서 연이은 두 번째 탐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1541년 봄에 탐험대의 주력부대는 지금의 텍사스[주; 본래의 이름은 Tejas 떼하스; 지붕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멕시코에서 사용되는 스페인어의 J는 X로도 표기가 가능하다. 같은 맥락으로Mexico를Mejico로 javier 를Xavier 등으로도 표기한다]의 뻴로두로 [Peloduro] 캐년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코로나도는 30명의 기병을 제외한 대부분의 탐험요원들을 남겨두고, 전설상의 부유한 땅 키비라(지금의 캔자스 지역)를 찾기 위해 북쪽으로 탐험을 지속했다. 1541년 6월 29일, 마침내 탐험대는 지금의 아칸사 [Arkansas; 이 단어 역시 Al cansas라는 스페인어가 어원 '고난을 향해' 라는 뜻] 강을 건너 지금의 Dodge City지역에 도착하여 목적지인 황금도시 키비라를 찾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반 유목생활을 하는 가난한 인디언 부락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탐험대는 그 지역에 요새를 짓고 25일 정도 머물다가 뉴 멕시코 지역으로 철수하였다.


현재 사용하는 Kansas[캔자스]주의 어원은 스페인어인 Cansas[깐사스; 피곤 혹은 고난이라는 스페인어] 에서 유래되었다. 일확천금을 얻고자 시작한 북미대륙의 대규모 탐험은 험준한 로키 산맥을 오르내리는 고난의 여정으로, 아무런 성과도 없는 그야말로 힘 빠지고 절망스런 고행의 탐험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처럼 혹독했던 고난의 탐험 덕분에 그 후 이 지역은 스페인 영토가 되었다가 1800년에 프랑스 나폴레옹에게 넘어갔고 1803년 제퍼슨 대통령의 루이지애나 매입 건으로 미국 영토가 되어 1821년1월 29일, 정식으로 미국의 34번 째 주로 등록 되었다.


오늘날에도 캔자스 주에서는[고난을 뚫고 목적지까지]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코로나도의 캔자스주 최초의 고난 탐험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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