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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과 대화요법
이해왕 | 조회 5,318 | 06.23.2011

한 알코올 중독자의 따님과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2002년에 주고받았던 적이 있었다.


▶ 따님의 글 - 알코올 중독자로 평생을 산 우리 아버지

어떤 종류의 중독이든 중독자들은 현실도피적인 사람들 이다. 그들은 대개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으로 세상사는 재미를 모르며 친구가 없고 사회활동이나 취미도 없다.

나의 아버지가 대충 이런 종류의 중독자였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취미가 없고 비사교적이어서 친구도 없었다. 나의 할아버지도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는데 알코올 중독자였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공통점은 소극적이고 비사교적이며 표현력이 부족해서... 술이 현실에서의 문제점들을 잊게 하거나 도피처 구실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뇌기능을 활발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뇌의 조절기능을 억제해서 평소에 얌전하고 조용한 사람이 술만 마시면 자제해야 할 부분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난폭해지는 것이다.

아버지도 술만 취하면 성격이 변해서 말이 많아지며 공격적이 되고 남들을 비난하곤 했다. 아버지의 고향은 이북이다. 6.25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올 때... 할머니는 "내가 집을 지킬 터이니 너희들은 난을 피하고 오너라!" 하며 눈물의 작별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발길을 옮긴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버지는 미군 폭격기에 의해 집이 날라 가는 걸 목격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술만 취하면 가끔 그 이야기를 되풀이 했다! 그리고 산처럼 쌓인 시체 위를 걷던 이야기도... 이런 우울한 감정 때문에 술로 마음을 달랬던 것 같다.

어렸을 때의 일이다. 그 때 이웅평 대위라는 북한 장교가 비행기를 몰고 한국으로 넘어 오던 날,  전쟁경보가 울리고 시끄러웠다. 그 때 나는 아버지와 단둘이 집에 있었는데 우리 아버진 마당 청소를 하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가 청소다. 아버진 아무 동요 없이 계속 청소를 하면서 내게 말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아무도 못 살 텐데... 나는 집에서 죽을 란다!" “도망가지 않고 여기서 그냥 죽으련다!” 하는 우리 아버지의 그 때의 태도는... 바로 아버지가 현실에 대응하는 평생의 모습이었다.

우리가족은 알코올 중독이 병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었다. 폐인이 될 때까지... 내 아버지의 죽기 전 모습은 뭔가 정서가 불안하고 희망이 없고 그리고 아무 힘도 없어 툭 치면 그냥 쓰러질 것 같은 그런 비참한 모습이었다. 알코올 중독자로 평생을 산 우리 아버지! 한 번도 늠름해 보이거나 소신 있어 보이거나 온정신으로 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환자임을 공감하고 가족이 함께 치료에 참석해서... 환자 자신과 가족이 고통을 외부 사람들과 함께 나눌 때에 치료의 길이 보일 것이다.


▶ 답변 글 - Talking Cure

내 가정의 중독문제를, 그것도 "나의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 있었다는 이야기를 직접 하는 따님을 보면서 가정과 사회의 중독문제를 깊이 이해하는 용기 있는 여성인 것을 알 수 있다.

따님의 글 중에서 할아버님과 아버님께 동일한 알코올 중독문제가 이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분명 중독증 원인을 규명하는데 “가계도(家系圖 -Family tree)”를 빼놓을 수는 없다. 직접 대면상담을 통해서 내가 만나 본 30~40대 알코올 중독자들 중에는 처음 결혼한 여성과 헤어지고 나서부터, 또는 부모가 그룹 고액과외를 시켰는데 도저히 과외동료들을 따라갈 자신이 없어서 사이다 병에 대신 소주를 넣고 마시기 시작했다가 알코올에 중독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물론 가족의 유전적인 요인도 작용하겠지만 성장과정에서 너무 나약한 성격 또는 극단적인 성격형성으로 성장하였다가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칠 때에 술로 위안 받다가 의존과정을 거쳐서 중독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누구든 중독이라는 문제로 자신이나 내 가족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위대하다. 상담학에서는 문제를 처음 외부에 이야기할 때부터 회복이 시작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님은 알코올 중독을 “병”으로 깨달으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까지 했다.

중독증 치유과정에서 “나의 이야기를 말 하는 것(Telling my story)”은 가족들은 물론 중독자의 회복에도 도움이 되며 이를 “대화요법(Talking Cure)” 이라고 한다. 따님의 "알코올 중독자로 평생을 산 우리 아버지" 글을 통해서 다른 중독가정들도 문제를 숨기거나 수치심으로 일관하기보다는 중독을 가족의 힘만으로는 고칠 수없는 중병으로 인식해서 가능한 빨리 회복으로 나오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가족들이 내 가정에 알코올 중독자가 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7년의 세월이 걸리고, 또 이를 안 가족들이 치유기관을 알아보는 데는 3년이 더 걸린다는 연구조사가 있듯이, 알코올 문제에서 회복으로 나오기까지 평균 10년이나 걸린다.

아마 7년이 지난 지금 따님은 결혼을 해서 자녀까지 두었을 나이다. 중독을 병으로 인식한 이 주부는 분명 남편에게 어떤 중독문제가 보이면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아니라 단 몇 달 만에 남편을 회복으로 안내할 수 있을 것이고, 자녀들에게는 게임과 같은 어떤 중독문제가 생기기 전부터 예방에 치중하는 관심과 사랑으로 중독문제가 없는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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