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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역사, 가벼운 연출…여순사건 다룬 영화 "동백" 연합뉴스|입력 10.15.2021 10:25:11|조회 639
영화 '동백' 속 한 장면[해오름ENT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무리 나쁜 기억이라도 세월이 지나면 없던 일인 듯 잊힐까.

영화 '동백' 주인공 순철(박근형)은 가마솥에 국물을 우려내며 아들에게 말한다. 좋은 국물 맛을 내는 비법은 따로 없고 그저 묵묵히 기다리면 된다고. 속상한 것들도 함께 넣어 펄펄 끓여내라고.

그러나 정작 순철은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순철의 아버지는 1948년 일어난 여수·순천 사건의 민간인 피해자다. 진압군을 피해 자신의 국밥집으로 숨어든 군인을 도와주지만, 은혜를 저버린 군인의 밀고로 결국 '빨갱이'로 몰려 총살당한다.

팔순이 된 순철은 국밥집 단골에게 서비스 공깃밥 하나 주지 않는 괴팍한 늙은이로 변해 있다. 인심을 잃은 가게는 나날이 파리만 날리는데 어느 날 갑자기 행운이 찾아든다. 서울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연실(신복숙)이 국밥을 맛본 뒤 프랜차이즈 사업을 제안하면서다.

아들 부부와 손자에게 드디어 제대로 된 가장 노릇을 하게 된 순철은 들뜬 마음으로 사업을 준비하지만, 연실의 아버지가 옛날 순철네 국밥집에 숨었던 그 군인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일이 틀어지게 된다. 내가 살기 위해선 은인도 저버려야 했던 비극적 역사의 후손들은 과연 화해할 수 있을까.

'동백'은 여순사건을 처음으로 스크린에 담은 영화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제주 4·3 사건과 더불어 해방 후 가장 비극적인 역사로 꼽히는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 다소 미숙해 아쉬움을 남긴다.

여순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나 당시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짚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지나치게 드라마틱한 요소를 많이 넣어 감정이입을 오히려 방해한다. 성공한 사업가가 마음의 빚이 있는 가난한 가족을 경제적으로 돕는다는 내용은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상투적 설정이다.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일부 장면과 대사, 매끄럽지 못한 구성 등도 아쉬움을 남긴다.

비극적 역사를 소재로 했다고 해서 영화가 꼭 묵직하기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거운 역사에 어울리지 않게 빈약하다면 관객에게 감동까지 줄 순 없지 않을까.

오는 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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