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37·SSG 랜더스)을 위한 날이었다.
그런 분위기가 내성적인 최정을 힘들게 했지만, 최정은 이마저도 극복하고 KBO리그 개인 통산 홈런 공동 1위에 올라섰다.
최정은 16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 홈 경기, 3-4로 뒤진 9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 볼 카운트 3볼-1스트라이크에서 상대 마무리 정해영의 5구째 시속 147㎞ 직구를 받아쳐 좌중간 담을 넘어가는 동점 솔로 아치를 그렸다.
올 시즌 9호 이자, 프로 20년 차를 맞은 최정의 개인 통산 467호 홈런이다.
2013년 6월 20일 이승엽 두산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 352번째 홈런을 치며 개인 통산 홈런 1위로 올라선 뒤 10년 8개월 동안 이 부문 1위에는 이승엽 감독 이름만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이날부터 이승엽 감독과 최정의 이름이 KBO 개인 통산 홈런 1위 자리에 나란히 있다.
최정은 홈런 한 개를 추가하면, '국민타자' 이승엽 감독을 넘어 KBO 개인 통산 홈런 단독 1위로 올라선다.
경기 내내 최정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SSG 구단과 KBO는 최정의 기록적인 공을 확보하기 위해, 최정이 타석에 설 때마다 '표시'를 한 공을 투수에게 건넸다.
최정은 "내가 타석에 설 때마다 투수에게 새 공을 건네는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고 털어놨다.
자신에게 쏟아진 관심에 마음이 조금 흔들린 최정은 1, 3, 5회에는 범타로 물러났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7회에 좌전 안타를 쳤다.
3-4로 뒤진 9회말 2사 후에는 극적인 동점포를 쳤다.
이렇게 최정은 역사적인 '467번째' 홈런에 '서사'까지 담았다.
최정의 동점포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SSG는 6-4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경기 뒤 최정은 "내 홈런으로 동점이 되고, 한유섬의 끝내기 홈런으로 우리 팀이 승리해 기쁘다"고 '평범한 소감'을 밝혔다.
취재진이 '기록'을 상기시킨 뒤에야 "정말 대단한 이승엽 감독님의 기록과 타이를 이뤄,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 극적인 동점 홈런으로 KBO 개인 통산 홈런 공동 1위가 됐다.
▲ 동점만 되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9회말 2사 후에 내 홈런으로 동점이 되고, 한유섬의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해서 기쁘다. 내가 이렇게 주목받는 게, 참 영광스럽다. 정말 대단한 이승엽 감독님의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 대기록을 앞둔 터라 압박감을 느꼈을 텐데.
▲ 이상하게 부담이 되더라. 이상한 상상도 하고, 욕심도 내봤다. 내 타석이 되면 공을 바꾸고, (KIA 포수) 김태군이 '전 국민이 선배의 홈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서 더 기분이 이상했다.
-- 467호 홈런을 친 상황을 떠올려보면.
▲ 정해영의 공이 워낙 좋아서 홈런을 노리진 않았다. 사실 나는 볼넷을 기대했다. 그런데 3볼에서 정해영이 과감하게 스트라이크를 넣었다. '그래, 마무리 투수라면 이 정도 승리욕은 있어야지'라고 생각했고, 빠른 공을 노렸다. 예상대로 직구가 왔고, 다행히 홈런이 됐다.
-- 대기록을 세우고도 담담한 표정인데.
-- 앞선 타석에서는 잘 풀리지 않았는데.
▲ 나만의 스트라이크존을 지키면서 냉철하게 대처해야 했는데, 뭔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5회 (삼진을 당할 때는) 나도 모르게 욕심이 나서 큰 스윙도 했다. 더그아웃에서 동료들에게 '나 좀 살려줘, 못 하겠다'라고 하소연도 했다. 다행히 7회에 안타가 나오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타격 자세도 돌아왔다.
-- 최정이 홈런 타자가 된 계기가 있나.
▲ 지금도 홈런 타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 시즌에 20홈런을 치기 전에도 나는 '홈런이 잘 나온다'고 생각했다. 2011, 2012년부터 공이 뜨기 시작했고, 홈런도 늘었다. 미겔 카브레라의 타격 자세를 따라 하는 중에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와 경기 때 정말 좋은 타구가 나왔다. 중월 홈런이 됐는데, 그전까지만 해도 내가 밀어서 홈런을 칠 거라는 생각을 못 했다. 그때 '아, 이거다'라고 생각했고 이후 공을 띄우는 훈련을 많이 했다.
-- 프로 20년 차에도 홈런왕 경쟁을 펼치는 걸, 팬들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 그냥 내 나이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예전보다 회복이 더디다는 건 느낀다. 하지만, 몸 관리를 열심히 하면 후배들에게 처지지 않고 경기에 나설 수 있다고 믿는다. SK 와이번스 시절부터 좋은 선배들과 생활하면서 많이 배웠다. 20년 동안 크게 다치지 않고 잘 버틴 나를 칭찬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 이제 홈런을 칠 때마다 KBO리그 기록을 경신하는데.
▲ 나는 은퇴할 때까지 '시즌 10홈런'만 생각할 것이다.
-- 468호 홈런 신기록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 홈런 한 개는 언젠가 나오지 않겠나. 이런 생각으로 매일 경기를 치를 것이다. 오늘 홈런을 쳐서, 부담감이 줄었다. 물론 빨리 468호 홈런을 치면, 더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사실 지금 가장 큰 걱정은, 팀이 지는 경기에서 내가 기록을 세우는 것이다. 꼭 이기는 경기에서 468호 홈런을 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