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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유리천장 깬 개척자 파월…부시행정부 대북정책 총괄 연합뉴스|입력 10.18.2021 10:22:51|조회 352
걸프전 승리 '전쟁영웅'…흑인 대통령 후보 거론됐지만 불발
'네오콘' 강경파 틈에서 역할 제한적…한반도 근무 인연도
코로나19로 별세한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





18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별세한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은 유색 인종에게 보이지 않게 드리워진 유리천장을 깬 '최초'의 흑인이다.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후 대중의 압도적 인기를 등에 업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앞선 '흑인 대통령'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됐지만 보수적인 공화당 정서에 가로막혀 끝내 마지막 고지는 넘어서지 못했다. 

◇ 흑인 정치 새 역사…네오콘 틈에서 역할 제한적

그의 일생은 '미국인 성공신화'의 전형이었다. 자메이카 부모님 밑의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베트남전을 거쳐 전쟁 영웅으로서 성공적 길을 걸었다.

특히 그는 냉전 시절 군 최고위급 장성으로서 가능한 한 무력 개입을 피하되 국가 이익을 위한 개입이 불가피할 경우 압도적인 군사력을 투입, 속전속결로 승리를 결정짓는다는 이른바 '파월 독트린'을 정립했고 이는 걸프전 당시 미국민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그는 2007년 당시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파월은 '문제 해결자'다. 그는 군인으로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배웠다"며 "그는 관점은 가지고 있지만, 사상가는 아니다. 그는 열정은 있지만, 광신적이지는 않다. 그는 무엇보다 최우선적으로 해결자"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행정부 당시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을 지낸 그는 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발탁으로 첫 흑인 국무장관에 오르며, 백인 중심의 미국 정계에서 개척자이자 선구자로서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당시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 등 강경 '네오콘(신보수주의)' 매파들 중심의 백악관에서 온건파인 고인의 입지는 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핵 문제를 비롯해 중동·이스라엘 관계 등 주요 외교 사안에 있어 강경파에 가로막힌 파월 장관의 역할은 제한적이었고, 주로 부시 행정부의 극단적 성향을 완화하고 재앙을 막는 데에 한정됐다고 평가했다.

당시 행정부에서 그는 '노인(old man)' 취급을 받았고 정보 접근에도 제한적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시 전 대통령은 재선 성공 후 2기 행정부 구성 과정에서 그를 배제했다. 



코로나19로 별세한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





◇ 북핵 '다자주의' 일관…한국 근무 남다른 인연

전임 클린턴 행정부 시절 일관된 기조인 대북 포용 정책을 놓고도 파월 전 장관은 부시 행정부 내에서 갈등을 빚었다.

그는 취임초 대북 정책 기조의 변화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이는 매파가 득세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노선과는 거리가 뚜렷한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대북 속도조절론'으로 노선 변화가 불가피했다.

특히 2002년 부시 전 대통령이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한 뒤 북미 대화는 사실상 경색 국면을 면치 못했고 이는 그의 재임 기간 내내 이어졌다.

그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북미 직접 대화에는 일관되게 선을 긋고 다자틀 원칙을 고수했으며, 2002년 11월에는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에 제공했던 중유공급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1973년부터 1년 가량 한국에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자서전 '나의 미국 여행'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한국에 대한 개인적 애정을 엿보였다.

그는 "1973년 가을부터 1년 동안 주한 미8군 사령부 산하 동두천에 있는 부대의 보병 대대장으로 근무했을 때가 직업군인으로서 가장 만족스럽고 활력이 넘쳤던 때"라며 "서울에서 경제 기적을 예고하는 증후들이 서서히 나타났다"고 회고했다.

카투사에 대해서도 "내가 지휘한 병사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병사들"이라며 "미군 병사의 하룻밤 술값에 지나지 않는 3달러의 한 달 봉급으로 부대 내 생활을 하는 등 끈기있고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그는 2004년 방한 당시 한국 대학생들과 만나 주한미군 주둔 문제를 설득하는가 하면, 2002년 미군 장갑차에 두 여중생이 숨진 사건이 발생하자 사과의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 '흑인 대통령' 오바마 후원자…트럼프 정면 비판

퇴임 후 중도파로서 신중한 태도를 보여온 파월 전 장관은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며 든든한 지원군의 역할을 자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에는 인종차별적인 그의 언행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활발히 목소리를 냈다.

2020년 대선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태 이후에는 공화당을 정치적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절연을 선언했다.

흑인 정치의 한 역사를 쓴 파월 전 대통령의 별세를 놓고 각계는 애도를 보냈다.

최초의 흑인 국방장관인 로이드 오스틴 장관은 "세계는 가장 위대한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을 잃었다"며 "그는 오랫동안 나의 멘토였다"고 추도했다.

공화당 소속 밋 롬니 상원의원은 "조국과 자유에 헌신한 정치인이자 개척자로서 고인의 업적은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그의 별세 소식에 너무나도 안타깝다"며 "그는 여전히 할 일이 많았다. 그는 따뜻하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애도를 표하고 "그와 많은 부분에서 의견이 달랐지만, 항상 그를 존중했고 그의 업적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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