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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아픔이 왜곡되지 않도록 라디오코리아|입력 04.16.2021 15:35:22|조회 7,208

중국 송산의 일본군 위안부

1994년 9월 연합군이 송산 위안소에서 살아남은 위안부들을 찍은 사진

출처: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광복을 맞은 지 76주년이 되는 해로 접어들었다. 지난 76년 동안 한국과 일본 양국의 대표자들은 관계 ‘개선’에 힘쓰겠다며 말만 앞서는 의지를 내비칠 뿐, 한일 관계의 골은 오히려 깊어만 갔다.

 

일본은 그동안 일제가 자행한 성폭행, 성 노예, 강제 징용, 고문, 학살 등에 대한 반인류적 전쟁 범죄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를 지속해왔다. 그리고 지난달(2월) 1일, 하버드 대학교 마크 램지어 로스쿨 교수가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논문을 발표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자발적 매춘부’라는 주장을 펼쳤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진행 중인 일본과 그들을 대변하는 램지어 교수 같은 인물들의 역사 왜곡 시도들에 대해 라디오코리아는 각 분야 전문가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위안부 역사를 다시 짚고 미국 내 한인 사회, 특히 차세대를 대상으로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응해준 11명의 명단은 아래와 같다. 모두 이번 사태에 대해 Action을 취한 인물들이며 아래의 기사는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름 가, 나, 다 순)

 

김현정 위안부행동단체 대표 (2월 26일, 3월 2일 인터뷰):

 2007년 마이크 혼다 전 의원이 주도한 ‘위안부 결의안 통과’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활동 시작. 주요 활동은 글렌데일 소녀상 세우기 캠페인, 기림비 건립, 교육 활동, CA주 고교과정 역사 교과서 위안부 문제 기재 캠페인 등.

 

마이크 혼다, Mike Honda 전 연방하원의원 (3월 5일 인터뷰):

일본계 미국인 CA주 전 하원 의원.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내 일본계 수용소에서 지냈으며 산호세 주립대학 졸업 후 교육계에서 일하다가 정계로 입문. 위안부 사죄 결의안 (HR121) 발의, 주도 등 위안부 관련 활동 다수.

 

마크 피터슨, Mark Peterson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학 박사, 전 BYU 한국학 교수 (3월 4일 인터뷰):

한국어 교육 협회 창립 멤버이자 초대 부회장, 미국 한인 교사 협회 창립 멤버, 로얄 아시아 학회 한국지부 회원, 한국학 위원회 위원장 등 한국 교육 관련 활동 다수. 현재 유투브 채널 “우물 밖의 개구리”로 한국학 관련 영상 제작.

 

미셸 박 스틸, Michelle Park Still CA주 48지구 연방 하원의원 (3월 4일 인터뷰):

2020년  CA주 제48지구 연방 하원 의원으로 당선. 前오렌지 카운티 수퍼바이저, 한국계 미국인으로 한국에서 태어나 1975년 미국으로 이주.

 

랄프 안, Ralph Ahn 도산안창호 3째 아들 (2월 26 인터뷰):

도산 안창호의 막내아들로 1926년 LA에서 출생. 도산 안창호 사망 3년 후 일본 진주만 폭격으로 미국 참전. 안필영은 1944년 일본에 맞서 싸우기 위해 해군 입대. 아버지 도산 안창호의 역사적 기억들을 알리기 위해 무한도전 등 언론사와 방송 다수 출연.

 

알버트 최, Albert Choi 미시건대 법대 교수 (3월 2일 인터뷰):

2009-2010년 하버드 로스쿨 Austin Wakeman Scott 객원교수. 램지어 교수 논문 반박하기 위해 연판장 작성. 현 미시건 로스쿨 교수

 

영 김, Young Kim 39지구 연방하원의원 (3월 3일 인터뷰):

 에드 로이스 前 연방 하원 외교위원장 보좌관, CA 주 65지구 하원 의원 시절 때부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활동.

 

토츠카 에츠로, Totuska Etusro 변호사, 류고쿠 대학 교수 (2월 26일 인터뷰): 1992년 IED(국제교육개발)을 대표해 위안부 문제를 국제 인권 위원회에 제기. 1993년 동경변호사회 인권상, 1998년 한국여성단체연합회 여성상 수상하는 등 폭넓은 인권 운동 참여.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이다” 서적 출판. 위안부를 “성 노예”로 바꿔 부른 시초자.

 

필립 안 커디, Phillip Ahn Cuddy 도산안창호 손자 (2월 26일 인터뷰):

도산 안창호의 외손자이자 안수산(Susna Ahn Cuddy) 여사의 아들. 안수산 여사는 미 해군에 입대한 최초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화랑청소년재단 (3월 3일 인터뷰):

박윤숙 총재가 설립한 단체로 비영리 청소년 단체. 11개국 47개 지부, 6500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글로벌 단체.

 

라비 아브라함 쿠퍼, Rabbi Abraham Cooper 유태인 인권단체 Simon Wiesenthal Center 대표 (2월 25일 인터뷰) :

LA에 본사를 둔 태인 인권 비영리 단체. 뉴욕, 토론토,  시카고, 파리 등에 지사 소재.

 

 

1. 역사 배경 설명

 

- 위안부 역사

 

 1932년, 일본은 상하이 사변을 시작으로 지난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 패전에 이르기까지 조선은 물론 중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일본 미크로네시아, 솔로몬 제도 등 일본군이 주둔했던 아시아와 태평양 각지에 위안소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운영했다.

 

전쟁의 효과적인 수행을 위해 병사들에게 성적 ‘위안’과 ‘만족’을 제공하고 사기를 진작시키겠다는 명목이었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아카이브814 인용) 당초 위안소에서 종사하던 여성은 일본 본토에서 매춘에 종사하는 여성이었지만 성병이 확산되자 큰 문제가 되었고 이에 더해  1937년도 난징 대학살이 맞물리게 된다.

 

전선까지 확대되면서 일본군의 성적 수요는 급증했다. 그 수요를 일본 여성으로 다 채울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고 자국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것도 일본이 점령지에서 효과적 점령 활동을 하는데 불리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자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의 여성을  표적으로 삼았다. 조선 여성의 경우 당시 경제적 어려움에 따라 교육 수준이 낮아 글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많아 성병으로부터도 자유로워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다.

 

 이에 전선 범위까지 확대되면서 그 타깃은 자연스럽게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식민지 현지 여성에게까지 이르게 된다. 역사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위안부 피해자 수가 아주 적게는 수만에서 많게는 40만 명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여성의 수는 10%에서 20%밖에 되지 않았고 그 수는 전쟁터에서 부상하거나 죽은 일본군들의 수보다 훨씬 높았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피해자들은 침묵해야 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결코 따뜻하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김현정 대표 인용)

 

지난 1945년 8월 6일과 9일,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원자폭탄을 투하한 이후 8월 15일에 일본 제국이 투항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다.

 

Mushroom cloud over Hiroshima, Atomic Cloud Rises Over Nagasaki

왼쪽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오른쪽은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형성된 버섯 구름

출처: United States Department of Energy

 

하지만 1945년 8월 15일 광복에서 9월 8일 미군 진주까지의 25일 동안 일본의 만행은 계속되었다. 무차별적으로 화폐를 찍어내 40억이었던 조선은행권의 발행고는 3배가 넘는 140억 원으로 뛰었고 이로 인해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그리고 일본 정부와 일본 군은 위안부 관련 자료는 물론 자국에 해가 될만한 자료들에 대한 대대적인 증거 인멸에 나섰다.

 

- 우리가 모르던 위안부 실태 (토츠카 에츠로 변호사, 김현정 대표)

 

태워지는 처녀들, 강일출 할머니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그림

출처: 나눔의 집•일본군'위안부'역사관

 

UN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성 노예였다고 발언해 일본에서 악명이 높다고 스스로를 소개한 토츠카 에츠로 변호사는  1932년 상하이사변 당시의 사건을 언급했다. 당시 상해에 해군 지정 위안소가 있었고 일본군은 업자를 통해 위안부 여성을 모집했다. 그런데 해당 업자는 위안부 여성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상해 음식점에서 근무할 여성이 필요하다는 거짓 정보를 흘렸다.

 

 실제로 일본 나가사키에 거주하던 한 여성이 해당 업자를 통해 근로 계약을 했고 상해로 길을 떠났다. 하지만 막상 상해에 가보니 식당은커녕 해군 위안소에 도착하게 된다. 당시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수법에 속아 위안소로 넘어갔다는 설명이다.

 

토츠카 변호사는 그때 당시에도 일본 형법을 근거로 국제 유괴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후 1936년 나가사키 중앙 재판소에서 업자 10여 명은 중형으로 처벌 판결이 내려져 실형을 살았다.  이 사건으로 일본은 발각되지 않도록 더욱 철저한 운영 방식을 고안한다.

 

철저한 비밀 제도로 만들어 직접 운영에 나섰고 발각되지 않기 위해 단속이 허술한 조선에서 여성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타깃은 일본 여성에서 한국 여성으로 바뀌었고 비밀스러운 위안부 제도 운영 하에 일본군의 잔혹한 만행은 계속되었다.

 

軍慰安所従業婦等募集ニ關スル件

육군성 부관 명의로 일본 육군 참모장에게 보내는 통첩안

위안부를 모집하는데 사회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라는 주문이 포함

수집처: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wam)

출처: 일본군 ‘위안부’문제연구소아카이브814

 

비영리단체  위안부행동 김현정 대표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위안부 실상을 전했다. 일본군은 중국에서 9살 여아를 성폭행했고 그 여아가 성병까지 얻었다는 자료, 군의관이 보고서를 썼는데 위안소를 ‘공중 변소’ 라고 표현한 내용,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일본 제국과 일본군은 조선 식민지와 점령지 여성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고 군수품을 생각해 인간 이하의 존재로 봤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김현정 대표가 만난 위안부 피해자는 당시의 참혹함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젖가슴 한 쪽이 도려냈다거나 강제 임신 중절로 배에 커다란 칼자국이 남아있거나 온몸에 문신이 새겨진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 일본 정부의 목적 (김현정 대표)

이렇게 산증인들의 증언과 수많은 자료들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왜 위안부 문제를 부인하는 것일까.

 

일본군 위안소 웹 지도

일본 시민단체가 2019년 공개한 일본군 위안소 웹 지도

출처: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박물관(WAM)

 

위안부행동 김현정 대표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일본 정부가 원하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 자체에 일본 측 책임이 없고 이러한 전쟁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사과들도 자세히 보면 상당히 교활한 부분이 존재했다. 일본 정부가 무엇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무엇에 대해서 사과를 한다는 것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즉, 위안부 제도가 전쟁 범죄였고 이것이 성 노예 제도였으므로 위안소를 운영한 것은 일본 정부의 법적인 책임이 있는 것으로 일본 정부가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2. 마크 램지어 교수 논문 사태

 

 2021년 2월 1일, 한국의 아픈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가 다시 일어났다.

 

마크 램지어 교수, 엘스비어(Elsvier) 전자자료 

왼쪽부터 마크 램지어 교수 인물 사진, Science Direct에 게시된 논문 캡쳐본

출처: Harvard Law School, ScienceDirect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명문으로 꼽히는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마크 램지어 교수가 발표한 논문이다. 논문의 핵심 내용은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였다는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당시 일본군과 계약을 통해 합의를 했고 강제성 없이 자행한 매춘 행위였으며 일정한 보수도 받았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논문이 발표되고 바로 하버드 안팎에서 비판이 빗발쳤다. 하버드 대학교 내부 학생과 동료 교수들은 물론 동부 한인회와 비영리 단체 등 여러 분야 종사자들이 논문에  규탄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즉시 국제적 논란으로 붉어졌고 사태는 아직까지 진정되지 않고 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접한 학자들은 ‘Shocked, 충격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Q .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토츠카 에츠로 변호사: 이런 주장이 세계 명문인 하버드 대학교에서 나왔다는 소식에 아주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보수파가 램지어 교수와 아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하버드 대학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의견들을 학계 논문으로 펼쳐냈다는 게 놀라웠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알버트 최 교수: 처음에 제 학생들을 통해서 이러한 논문이 발표됐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논문을 쓸 수 있었을까, 학자로써 한번 읽어봐야 되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읽어보니 여러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마크 피터슨 전 교수: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서 변호사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로스쿨은 어디까지나 사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논문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옹호자로 내세워 의뢰인을 지키도록 교육합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일본 정부를 지키기 위한 옹호론을 펼친 것으로 램지어 교수가 법정에서 판사에게 본인이 생각하는 근거들을 나열하며 판사를 이해시키기 위해 사실 여부가 파악되지 않은 ‘근거’들을 얘기한 것입니다. 즉,  변호사들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의뢰인의 편향적 견해(bias)에 따라 움직이듯 램지어 교수가 지금 이런 상황과 같다고 봅니다.

 

영 김 연방하원의원: 뉴스를 듣는 순간 피해자 할머니들이 생각났어요.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진실이 아닌것은 자명한데다 사실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역겨운 발언들이었거든요. 우리는 인신매매와 성 착취를 당한 피해자들의 권위를 찾아주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안겨주고 있어요.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이상 없어야한다고 생각하며 램지어 교수에게 사과를 촉구하기 위한 성명을 냈습니다.

 

필립 안 커디, 안창호 손자: 사실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이어져 왔던 일이기 때문에 사실 놀랍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여론의 큰 반응이 있었던 것은 놀라웠습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말이 되지 않죠. 이 사건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아요.

 

 

Q. 램지어 교수 논문 사태에 목소리를 높인 이유가 있습니까?

 

마이크 혼다 전 연방하원의원: 일본에서는 제가 한국 사람도 아닌데 일본계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비판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제가 재미 일본인이기 때문에 일본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일에 대해서는 나설 자격이 없다고 합니다. 일본인인 게 자랑스럽지 않냐는 소리도 자주 들어요.

 

1942년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입니다. 미국 정부가 일본계 강제 수용 캠프에 재미교포들을 붙잡아뒀고 저도 거기에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우리 일본계 재미교포들의 권리, 인권, 재산 등을 빼앗아갔습니다. 1988년, 그러니까 50년 정도 지난 후에  우리 커뮤니티는 당시의 책임을 미국 정부에 물었습니다. 사과는 물론 배상할 것을 요구했죠. 결국 10년 후에 레이건 전 대통령의 서명으로 법적인 사과를 얻어냈죠. 이 사건은 과거 일본과 아시아 사이 관계와 비슷합니다. 일본은 성 노예를 목적으로 위안부들을 납치했으니 인권 침해죠. 잘못된 행위였습니다.

 

지난 1992년 일본 정부는 위안부 사건에 대해 인정했어요. 당시 장관이었던 코노는 이 일에 대해 공부하고 일본이 저지른 끔찍한 일이었다고 설명하며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법적인 사과(앞서 미국 정부 차원과 같은)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 정부가 잘못된 일들을 인정하고 법적인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역사적인 책임감을 가져야합니다. 차세대에도 이런 사건을 교육해야 하고요.

 

제가 강제 수용 캠프에 있을 때 고작 1살이었어요. 어른이 되어서야 교육을 받고 미국 정부가 우리에게 한 일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국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만큼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사이도 일본의 인정과 진심 어린 사과가 이루어진다면 서로 믿을 수 있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 김 연방하원의원: 저는 에드 로이스 의원님 보좌관 시절 때부터 오랜 기간 동안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힘써왔습니다. 에드 로이스 의원님과 함께 이 이슈를 다루어오기도 했고요. 그렇기 때문에 램지어 교수의 발언은 역사를 왜곡하는 발언이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 군들의 만행으로 인해서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얼마나 큰 모욕을 주는 발언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8살에서 18살 사이의 여자 아이들의 고통은 한국이나 위안부 할머니들만의 문제가 아닌 전 인류 인권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성 노예로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지 않았습니까?  엄연한 사실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램지어 교수는 자기가 교수라는 직위와 학문의 자유 뒤에 숨어 무책임하고 모욕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 일에 대해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미셸 박 스틸 연방하원의원: 어린 여자아이들을 데려다가 성 노예로 이용했습니다. 거기에 계약서가 있었고 일정의 보상금도 주었다는 말도 안 되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사실이 무엇인지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안부 성 노예 제도로 많은 피해자가 있었고 또 막대한 수의 희생자를 낳았습니다. 이러한 잔혹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인간으로서 예의를 갖춰도 모자랄 판에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쳤죠. 램지어 교수는 교수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트위터를 통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저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 뵙기도 했었어요. 그분들이 그 많은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피해자인데 숨어사셨어요. 그런데 일정 보수를 받았다느니 말도 안 되는 역사를 만들어 내는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우리 다음 세대에도 거짓말을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서도,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고 교육하기 위해서도 이 문제는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안소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군인들

출처: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Q. 램지어 교수의 정식 직함이 Mitsubishi Professor of Japanese Legal Studies입니다. 일본 기업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해당 논문이 일본 기업이나 정부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십니까.

 

토츠카 에츠로 변호사: 저는 램지어 교수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본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깊은 말씀은 못 드립니다. 다만 램지어 교수와 일본과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지 않을까요? 18살까지 일본에서 자라면서 교육을 받았고, 일본 연구를 하고 있고, 미츠비시와의 관계도 있겠지만 그걸 넘어서 아주 깊게 일본 연구를 하고 일본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램지어 교수가 일본 사람들이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 일본 기업이 지향하는 것들을 듣고 스스로 판단해서 논문을 썼겠지요. 특히 일본 보수파의 의견에 좌우되기 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경제학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라고 생각하고요. 사람 매매조차도 한때는 자본주의 사회의 하나의 경제 활도이죠? 성과 관련한 문제도 경제적으로는 돈으로 교환되어 온 역사도 있고, 이러한 인간 사회의 존재 방식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요.

 

 

Q. 하버드 측은 ‘학문의 자유’라며 그 범위는 다수의 의견을 불편하게 만드는 소수 의견도 해당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크 피터슨 교수: 아주 어려운 개념입니다. 학문의 자유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의 논문에 대한 비판은 교수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라 ‘논문’에 향하는 것입니다. 또 제 비판은 하버드 대학에 향하는 것도 아닙니다.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에 하버드 대학뿐만 아니라 어느 대학에서든 논문에 대한 조치를 취하기가 쉽지 않고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어요. 이 논문은 학계에서 비판돼야 하고 학계의 움직여야 하는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왜 하버드가 해결에 나서지 않느냐’라고 물어보는데요 하버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하버드는 해당 사태에 있어서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부주의하고 부적절한 주장을 펼친 소속 교수의 피해자인 것입니다. 하버드를 비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학문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알버트 최 교수: 저를 포함한 경제 학자분들과 공감대가 형성돼서 연판장을 쓰게 됐습니다. 우리가 하고자 했던 것은 첫째로 하버드 로스쿨 교수가 이러한 논문을 썼다는 것, 이런 문제 자체를 가급적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논문이 철회되고 학술지에 실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논문에 대해서 출판사 측에서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 두 가지가 목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왜곡을 참을 수가 없었고 학자로써는 같은 학계 학자로써 이 논문으로 인해 부정적 영향이 생길 것이란 생각을 했기 때문에 연판장에 참여했습니다.

 

연판장에서도 저희는 학문의 자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움직임이 학문의 자유를 구속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짚었습니다.

 

학문의 자유는 당연히 인정이 되어야 합니다.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어서는 안된다는 점도 저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학문의 자유에도 어디까지나 한계라는 게 존재하죠.

 

대표적인 예로 남의 것을 베껴 썼다든지, 이 출판사에 출판한 것을 또 다른 곳에 똑같이 출판한다든지, 존재하지도 않는 데이터를 가지고 만들어냈다든지 등 그런 면에서는 학문의 자유를 존중할 수 없죠.

 

아무리 학문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해도 이러한 한계는 확실 있다고 봐요. 적어도 사견을 바탕으로 봤을 때는 이 논문 자체가 그 한계를 넘은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토츠카 에츠로 변호사: 학문의 자유는 중요합니다. 제 논문 같은 경우도 일본 사회 다수의 의견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학문에 자유가 있어 일본에서도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기재하지 마세요’라고 제재를 가하게 되면 출판이 어려워집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학술지에 마땅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그것에 합당한 절차에 따라 처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이크 혼다 전 연방하원의원: 학문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의 논문 같은 경우 제대로 된 검토 절차가 생략된 채 출판될 예정이었습니다. 많은 학자들의 반박으로 일단은 출판이 보류되긴 했지만 해당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면 또 다른 연구 자료가 되기 때문에 그때는 이미 늦어버린 거죠.

 

라디 아브라함 쿠퍼 대표: 이건 ‘표현의 자유’ 를 남용한 것입니다. 책임을 피하려는 핑계일 뿐이죠. 불행하게도 현재 수많은 유수 대학들에서 이런 이슈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을 지원하던 국가들의 재정적 원조가 있었던 것으로 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 커뮤니티는 메이저 대학들이 재정적 원조를 받는 나라의 정치적 관점을 상당 부분 수용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필립 안 커디, 안창호 손자: 하버드는 이 일에 연루되지 않기 위해 창의적인 변명을 했다고 봅니다.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학문의 자유’가 될 수 없죠.

 

 

Q. 학문적으로도 오류가 있다고 보십니까.

 

토츠카 에츠로 변호사: 어떤 연구를 하기 전 선행 연구 자료를 우선 다 보고 난 후에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학문적인 철칙입니다. 램지어 교수의 경우 선행되는 연구 자료를 보지 않았다는 것부터 학문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나 일본 학자의 연구, 특히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무시한 채 논문을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또한 논문이 출판되기 전에 사전 심사를 거쳐 출판에 적합한지 아닌지 판단해야 하는데 그런 심사 절차를 건너뛴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사태로 하버드 대학교나 해당 출판사의 심사 기준이 굉장히 허술했다고 볼 수 있죠. 이 때문에 품격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수준이 떨어지게 되고 하버드 대학 자체 명성에도 상처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런 점에서는 하버드 측도 출판사 측도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학문적 수준과 평판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도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충분히 생각해야겠죠. 저만하더라도 하버드 대학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달라졌다고 생각하는데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돈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등의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시스템을 재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버트 최 교수: 출판사 에디터들이 램지어 교수에게 해명 요구를 했다고 합니다. 논문 데이터가 존재하는지, 램지어의 논리에 대해 어느 정도 해명을 요청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절차적으로 말이 되는 거겠죠. 여러 학자들이 반박을 하니까 적어도 저자에게는 해명의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 절차에 따라, 해명이 어느 정도로 돌아오느냐에 따라 논문 출판 여부가 결정되겠죠.

 

 

Q. 램지어 교수가 논문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알버트 최 교수: 저희가 원했던 것은 논문 자체의 반박이지 캔슬 컬쳐 (Cancel Culture)를 의도했던 것이 아닙니다.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저자가 논문을 잘못 쓸 수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램지어 교수가 학계에서 얼마나 큰 활동을 활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현정 대표: 전 세계적으로 여러 학자들이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반박문을 많이 쓰고 램지어 교수가 쓴 논문을 하나하나 다 짚어가면서 램지어 교수가 근거 자료라고 제출한 출처를 모두 검토했죠.

 

그러자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어떠한 증거도 근거도 없는 주장을 펼쳤다는 것이 만 천하에 공개가 된 거예요. 어느 누가 와서 이러한 반박에 대한 변호를 하려고 해도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자 램지어 교수도 막다른 길에 봉착한 것이라고 봅니다.

 

램지어 교수가 학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이상 억지 주장을 해서는 어림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게 아닐까요. 더 이상 이 이슈에 대해서 연구를 하지 않겠다는 아주 비겁한 말을 하기도 했었죠. 저는 제대로 해결이 되고 있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조선인 학살과 위안부 등 일본의 만행을 부정하는 것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인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알버트 최 교수: 저도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규모 자체는 다를 수 있지만 전쟁 범죄는 전쟁 범죄로 인정이 되어야 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수 십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게 매우 안타깝습니다.

 

마크 피터슨 교수: 홀로코스트가 더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었기 때문에 더 끔찍한 일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죠. 둘 다 전쟁 범죄입니다. 다방면으로 인권침해에도 해당됩니다. 일본은 난징 전쟁의 피해자들을 대신해서 위안부들을 피해자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A Jewish boy surrenders in Warsaw

1943년 독일군에게 붙잡힌 유대인들

출처: Unknown author 

 

Q. 나치의 유태인 학살, 강제 수용 인식에 비해 일제가 자행한 위안부나 강제 징용, 조선인 학살 등은 전 세계적으로 심각성과 역사 인식이 부각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랄프 안, 안창호 아들: 지난 1800년과 1900년대 초를 돌이켜보면 당시 한국은 대외적인 외교가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한국 정부의 외교 활동이 제한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일제의 만행을 외부 즉, 국제사회에 널리 알릴 수 없었겠죠.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일제 만행을 알릴 수 없던 시작이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필립 안 커디, 안창호 손자: 한국 역사 교육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홀로코스트 등 나치의 만행보다 더 빨리 일어났는데 현재까지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에요. 하버드에서 이런 논문이 나온 것도 결국 교육 부족 문제 때문이에요.

 

영 김 연방하원의원: 이런 이슈들에 대한 역사 인식이 결여되고 심각성이 부각되고 있지 않은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일본 정부와 램지어 교수 같은 인물들이 인정은커녕 역사를 왜곡하고 덮고 지나가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인식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가 목소리를 높여서 알리고 이 문제에 대해 꾸준히 교육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크 혼다 전 연방하원의원: 유럽은 백인 다수 사회입니다. 미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시안의 사건보다는 유럽의 사건에 집중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아시아보다는 유럽에 무슨 일이 있는지 더 궁금해하죠. 유럽에서는 독일에서 홀로코스트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발언하면 감옥에까지 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일본은 오히려 어쩔 수 없었던 상황 그러니까 상황을 보고 대처를 미연에 했다는 ‘잘한 일’이라고 합니다. (인식의 차이겠죠.)

 

알버트 최 교수: 복잡한 이슈가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역사 학자가 아니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것을 토대로 말씀드리자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네요. 첫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는 유럽에서 역사 인식과 책임에 대한 공식적인 프로세스가 많았어요. 대표적으로 ※뉘른베르크(Nuremberg) 재판이 있습니다. 이런 재판을 통해 유대인 학살에 가담했거나 리드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상당히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도쿄 트라일이 있기는 했지만 일급 전범자에 대해서만 이슈가 있었어요. 하필이면 또 그 당시 한국도 중국도 내전에 돌입하는 바람에 유럽처럼 활발한 움직임을 취하지 못했죠. 이에 더해 일본이 여러 해 동안 역사를 부정했음에도 우리가 크게 반응하지 못했던 점이 이유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뉘른베르크(Nuremberg) 재판: 세계2차 대전 이후 독일의 나치 전쟁 지도자에 대한 국제 군사 재판이다. 재판소가 독일의 뉘른베르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뉘른베르크 재판으로 부른다.

뉘른베르크 재판의 피고인들

첫번째 열 왼쪽부터 헤르만 괴링, 루돌프 헤,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빌헬름 케이텔

 

마크 피터슨 전 교수: 홀로코스트는 정말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저지른 일은 많은 부분에서 독일과 비슷합니다. 홀로코스트는 더 많은 희생자를 낳은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받아들여졌죠. 하지만 전쟁 범죄의 책임에 대한 독일의 반응과 일본의 반응은 상반되었습니다. 독일은 잘못에 대해 인정하며 앞으로  그런 일을 절대로 저지르지 않겠을 것이라며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습니다. 여러 개의 당파가 자리 잡고 있고 지금은 우익의 지배하에 있죠. 일본 우익 세력들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저지른 일들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위안부와 같은 일제의 만행들이 국가 이미지를 훼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국가 이미지를 따지려고 합니다. 일본이 그토록 많고 참혹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말입니다.

 

위안부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일본이 난징 대학살로 국제적 망신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중국과 일본의 전쟁 이후 일본이 승리했지만 너무 분노한 나머지 중국 사람들을 죽이고 여성들을 성폭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은 국제적인 망신이었죠. 전 세계가 일본을 비판했던 만큼요. 그래서 일본은 난징 사건과 같은 일을 다시 벌일 수 없어 군인들을 관리하기 위해 위안부를 두게 된 거죠. 하나의 전쟁 범죄가 또 다른 범죄를 낳은 꼴이에요. 이 모든 끔찍한 과거를 일본은 앞으로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토츠카 에츠로 변호사: 독일과 일본의 비교죠. 독일의 경우 독일 본토가 점령 당해서 수도였던 베를린 함락까지 전쟁이 지속되었죠. 그때 다양한 증거가 연맹국 측에 넘어갔어요. 연구를 하는데 있어서 자료가 어느 정도 있었다는 거죠. 일본의 경우 미군이 오키나와까지 치고 들어왔지만 함락까지 가지 않았고 항복 선언으로 미군이 진주하기까지 일본군에게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대량의 증거 인멸이 일본 군과 일본 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자료가 없어진거죠.

 

 

Q. 한국인과 한인 커뮤니티는 앞으로 어떤 행동을 취해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디 아브라함 쿠퍼 대표: 수년 전 위안부 피해자가 미국으로 와 연설을 한 적이 있었죠. 무엇보다 저는 한국 사람들의 분노를 보고 놀랐습니다. 일본인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그들을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은 아니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교육입니다. 젊은 세대에게 과거에 자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려줘야 합니다. 나아가 다른 나라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도 교육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케이팝 가수가 나치를 형상하는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선다든지, 나치 군복을 입은 마네킹을 껴안고 사진을 게재한다든지의 행동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 않고 있고 역사 인식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되겠죠. 한국의 역사가 중요하듯 다른 커뮤니티의 역사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역사 인식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버트 최 교수: 유대인 아메리칸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유대인, 영국 유대인,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절대로 홀로코스트 만행을 잊어버리지 않고 거기에 대한 독일의 책임 추궁을 계속했거든요. 제 생각에는 한국 사람들, 일본 만행에 많은 피해를 겪었던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비슷한 행동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렌데일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

2013년 글렌데일 시 중앙도서관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해외 첫위안부 소녀상

출처: 라디오코리아 보도국 자료

 

토츠카 에츠로 변호사: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아주 훌륭한 운동을 한국에서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곳곳에서 해오고 있잖아요. 저는 이러한 운동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이런 움직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운동이 이제 운동만으로 남게 됩니다. 그러니까 연구도 제대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인 저도 마찬가지고요. 저 또한 변호사였기 때문에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 움직임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출간되면 운동보다 연구가 더 중요해지죠. 연구 내용을 한국어로만 기록하지 말고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크 피터슨 전 교수: 저는 요즘 오히려 마크 램지어 교수에게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으로 위안부 문제가 다시 세상 밖에 나왔잖아요. 제 유튜브 채널에서 재밌는 댓글이 있었는데, 이런 현상을 ‘부메랑’으로 비유했더라고요. 부메랑, 나갔다 들어오는 거잖아요? 램지어 교수가 잊진 한국 역사를 다시 되새길 수 있도록 해준 겁니다. 위안부 문제를 국제 법원에 가지고 가는 것도 하나의 안이 되겠죠. 국제적으로 재판이 이루어지면 반드시 승소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근거와 증거 그리고 증인까지 있으니까요.

 

일본은 지금 새로운 역사를 쓰려고 합니다. 당연히 반대하고 나서야죠. 미국에 있는 한인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비판할 수 있도록 미국 내 한국 커뮤니티가 노력해야 합니다.

 

미셸 박 스틸 연방하원하원의원: 제가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 당시 아르메니안 제노사이드(대학살) 문제를 공론화하고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마다 터키 정부로부터 항의 편지를 받았어요. 일본과 마찬가지로 과거 역사를 숨기려는 의도죠. 유대인 학살에 대한 역사에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 한인 커뮤니티가 다른 커뮤니티의 아픔을 제대로 알고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영 김 연방하원의원: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한인 커뮤니티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알리고 역사를 바로잡는데 계속 앞장서 주기를 부탁합니다. 지금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면 앞으로도 바로잡지 못할 뿐만이라 이와 같은 비극이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정의를 위해 힘쓰고 그의 목소리가 세계에 전달되고 잊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인류를 위한 우리의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비극과 인권 유린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이크 혼다 전 연방하원의원: 중요한 것은 위안부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교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백악관은 물론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연락을 취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만 연락하면 됩니다. 백악관이 만약 답변을 하지 않는다면 한국 언론사들은 백악관이 왜 한인들의 연락에 답하지 않는지에 대한 기사를 쓰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슈가 되죠.

 

백악관은 곤란한 상황에 휘말리고 싶어 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백악관에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한국 언론사들이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미국 정부가 직접적으로 일본에게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일본 정부가 계속 거짓말 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거에요.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덮기 위해 5억 달러 예산을 배정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한국은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요청해야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김현정 대표: 사실 일본 정부가 역사전을 치르고 있는 중이라고 봅니다. 이건 총성없는 전쟁이에요. 램지어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비슷한 논문이나 입장이 더 나올거에요.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가 미국에서 사는 시민으로써 어떤 행동을, 어떤 자세를 취해야할 것인가 굉장히 고민해야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서서 건강한 토론, 건강한 비판을 통해서 잘못을 지적하고 이것을 더 큰 교육의 기회로 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남에 대한 인신 공격이라던지 섣부르게 어떤 법적 소송을 한다든지의 방향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써 교육에 힘써야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의 본질은 한일간의 분쟁이 아니라 인류보편적인 여성 인권문제라는 것을 계속 강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타인종 커뮤니티랑 함께 일하는 것, 매우 중요하고요. 특히 돌아보면 글렌데일 소녀상을 세울 때, 철거 소송과 훼손 사건이 났을 때에도 아르메니안 커뮤니티, 그리고 글랜데일의 지역 커뮤니티, 그리고 일본계 커뮤니티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리 소녀상, 그리고 할머니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방어해주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한인 커뮤니티도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미국내 다인종 커뮤니티의 그런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고 지지해야합니다. 미국 사회에서 중요한 인권 문제에 우리 한인 커뮤니티가 적극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고 참여하고 지지해주는 것이 또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본의 전쟁 범죄나 위안부 문제 같은 인류 보편적인 문제에 타 커뮤니티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아주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3. 차세대 교육 필요성

 

다양한 시각으로 램지어 교수의 논문 사태를 바라보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그들이 입을 모아 강조했던 것은 교육에 대한 중요성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국에서 거주하는 한인 2세 등 차세대 한인 교포들은 그들의 뿌리인 대한민국에서 자행됐던 일제 만행을 잘 알지 못하고 있고 어쩌면 스스로를 미국 사람으로 인식하는 그들에게는 관심 밖의 일일 수 있다.

 

기억과 기록의 장

나눔의 집 제2역사관 내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 기록

출처: 나눔의 집•일본군'위안부'역사관

 

하지만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논문 사태가 우리에게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된 점이 있다면 한인 커뮤니티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점이다. 특히 라디오코리아가 만난 화랑청소년재단 학생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위안부 역사 문제를 다시 인지하고 논문을 규탄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다. 그리고 이 어린 학생들도 미국에서 위안부 문제 역사 인식이 얕은 만큼 자신들을 향한 교육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Q. 위안부 역사, 어디까지 알고있습니까? (화랑청소년재단 하나 정, 최지민 학생)

 

하나 정 학생: 화랑청소년재단에 들어가기 전에는 위안부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화랑청소년재단  활동을 시작하면서 위안부 역사를 배우게 됐고 이번 램지어 교수 논문 사태로 더 자세히 알게 되면서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Q. 위안부 역사를 처음 알게 됐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하나 정 학생: 당시 제 나이와 비슷했던 위안부 피해자들이 당한 일들을 듣고 정말 슬펐습니다. 또한, 고통스러운 일들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에 대해 알리려고 노력하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정말 용감하다고 생각했습니다.

 

 

Q. 동기, 선후배들은 위안부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있나요?

 

하나 정 학생: 저는 한국인이 거의 없는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한국인이 아닌 친구들은 본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배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적힌 한국 역사에 대한 내용은 한 페이지도 안됩니다. 한국 친구들 또한 제가 올린 램지어 교수 논문 관련 청원글을 읽기 전에 위안부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Q. 램지어 교수 관련 청원글을 올리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하나 정 학생: 램지어 교수는 이 사태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 논문을 통해 대중들에게 사실이 아닌 위안부 역사가 알려지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은 용납될 수 없기 때문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Q. 차세대 학생들에게 위안부 역사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최지민 학생: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2세, 3세 들은 본인이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한국 역사에 대해 배우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적극적인 행동이 기반 되어야 주변 사람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줄 수 있고, 역사 왜곡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위안부행동 김현정 대표는 위안부 문제가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같은 인류 보편적인 인권 문제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전세계적으로 홀로코스트의 인식이 높은 것이 저절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며 유대인들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정치권을 압박하고 교육,문화 예술계에서 이슈화를 시키고 있기 때문에 홀로코스트가 세계 인권문제로 정착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위안부 문제도 이와 마찬가지이며  미국 교육과정에 위안부 문제를 다뤄서 차세대들을 교육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고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인식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6년, 캘리포니아주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과정에 위안부 문제가 포함됐다. 하지만 아직 49개 주가 남아있다. 김현정 대표는 타주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공립 학교 교과 과정에 포함시켜 인류 보편적인 인권문제로 인식될 수 있도록 우리 한인 커뮤니티가 나서서 교육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역할을 펼쳐야 한다고 지적하며 이 과정에서 우리 차세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끌려감, 강순덕 할머니

위안부 피해자 강순덕 할머니가 그린 그림

출처: 나눔의 집•일본군'위안부'역사관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은지 46년만인 1991년, 성폭력 피해자라는 이유로 멸시와 차별, 냉대를 겪었던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는 차가운 사회적 분위기에서 침묵을 깨고 최초로 공개 증언에 나섰다. 일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발언과 책임을 회피하는 움직임, 그리고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에 분노해서였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각국 피해자들의 릴레이 증언이 이어지면서 위안부 문제가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되었다.

 

라디오코리아가 해당 마크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논문 사태를 집중 보도하는 것도 한인 커뮤니티의 일원이자 한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미디어 매체로써 침묵하지 않으려는 시도에서다. 위안부 문제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일본의 역사 왜곡 시도가 또 반복되지 않도록.

 

라디오코리아 김신우, 이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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