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코리아 라디오

05:00  출발 새 아침

07:00  Morning News

09:00  Morning Focus

10:00  아침마당

12:00  라라랜드(RALA LAND)

14:00  굿데이 LA

15:00  어서옵 SHOW!

17:00  Evening News

19:00  MBN 아침 & 매일경제

20:00  저녁 스케치

22:00  우리들의 밤

00:00  아침마당(재)

02:00  굿데이 LA(재)

03:00  어서옵 SHOW!(재)

☆ 라디오 칼럼

05:00  출발 새 아침

07:00  Morning News(Sat)

09:00  Weekly Magazine

10:00  행복한 아침

12:00  RK 홈쇼핑

14:00  MBN 특집다큐 H

15:00  가요시대

17:00  Evening News(Sat)

18:00  K-Town Tonight

20:00  Weekend Special

21:00  판타지아

23:00  라디오코리아 주간포커스

00:00  가요시대(재)

02:00  Weekend Special(재)

03:00  Weekly Magazine(재)

04:00  MBN 특집다큐 H(재)

05:00  출발 새 아침

07:00  행복으로의 초대 / 코너스톤아워

08:00  생명의 말씀 / 진리의 지식 시간

09:00  Weekend Special(재)

10:00  행복한 아침

12:00  Weekly Magazine(재)

13:00  RK 홈쇼핑

15:00  가요시대

17:00  MBN 특집다큐 H

18:00  K-Town Tonight

20:00  KBS 한국어 강좌

21:00  판타지아

23:00  라디오코리아 주간포커스

00:00  가요시대(재)

02:00  Weekly Magazine(재)

03:00  Weekend Special(재)

04:00  MBN 특집다큐 H(재)

10:00  아침마당
[03/27/2015] 홍병식(동양의 큰 별이 졌습니다) 칼럼
오디오를 재생 하려면 ▶ 를 클릭 하십시오.
동양의 큰 별이 졌습니다.

싱가포어의 국부 이광요 (李光耀) 전 총리가 91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그는 제 삼국의 경제 상태에 허덕이던 싱가포어를 세계최상급의 경제대열에 올려놓은 지도자였습니다.  개인당 국민 소득이 연간 $400 정도였던 소국 싱가포어를 $56,000 수준으로 올려 놓아 아시아의 최부국으로 만들었고 세계에서도 최강경제국 대열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는  싱가포어뿐만 아니라 동양의 큰 별이었습니다. 그는 31년 동안 싱가포오를 통치했지만, 사리사욕을 챙기지 않았습니다.  장기집권을 했지만,  공정한 선거를 통해서였습니다.  그가 일궈 놓은 싱가포어는 세계에서 가장 으뜸 가는 청결 국가이고 가장 쳥렴 국가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싱가포오는 씹던 껌을 거리에다 뱉으면 태형에 처해지고 0.5킬로그람 의 마약을 소지해도 사형에 처하는 법을 만들어 시행했습니다.  그의 대쪽 같은 통치스타일에 발목을 잡으려는 미국의 외교관을  내정간섭이라고 하여 추방하기도 한 배짱 정치인이었습니다. 

1959년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성취한 싱가포어는 무척 통치가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1963년에 국민 투표로 말레이 연방에 가입되었지만,  산업화 추진 견해가 다른 구성원들과  달라서 연방으로부터 축출되었습니다.  주민들은 75%가 중국 계였고 소수 인종으로는 인도계와 말레이시아 계이었기 때문에 이해관게가 신랄하게 대립되어 있었습니다. 더구나 국가의 공용어를 선택할 때  이 광요 총리는 싱가포어인들에게는 식민 통치 언어였던  영어를 추천했습니다. 말할 나위 없이 국민들은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이광요 총리는 영어만이 세계와 연결하게 될 것이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국민을 설득했습니다. 오늘 날 싱가포어는 영어가 국가의 표준 언어입니다.  그는 여론에 편승하거나 여론의 물결에 따라 미래지향적인 긴 안목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주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국민의 사랑을 받느니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될 것을 주저하지 않겠다.” 그는 자기가 추구하는 원대한 비전의 가부는 역사에 맡기고 소신대로 국가의 앞날을 위하여 매진했습니다.

그는 산업 자유화를 실천하여 민원 처리를 세계에서 가장 신속히 처리하게 만들었고 많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하여 법인세를 17%로 낮게 정착시켰으며  양도소득세와 상속세를 폐지했습니다.  국민의 소득세도 20%를 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만 개 이상의  외국기업이 싱가포어에 이주해 왔고  세계 유수 은행 200여개가 싱가포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난 수년 동안 세계적인 부호들이 싱가포어로 주거지를 옮겨 그 나라의 시민권을 획득한 사실은 크게 보도 된 바가 있습니다.  국민의 건강혜택이나 국민 주택 프로그램도 국가의 예산을 적자로 돌리지 않고 국세 지출을 절약함으로써 순탄하게 운영되었고 교통질서나 교육 프로그램도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이룩했습니다.  그가 완전한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그는 싱가포오가 영속적인 번영을 누릴 비전에 방해되는 요소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회고록에서 말했습니다. “내가 내 소신을 펴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싱가포어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이광요 씨는 영국의 래플 (Raffle) 대학교에서 일 등 자리를 내준 바가 없었고  캠브리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같은 래플대학교에서 만난 2년 연상의 부인과 결혼하여  현 싱가포어 총리인 이센룽 (李显龙,)를 포함해서 2남 1년를 두었습니다. 등샤오핑 중국주석도 이광요총리로부터 경제 모델을 배우려 했고 대한 민국도 6 번이나 방문하여 박정희 대통령과 수시로 경재견해를 교환했다고 알려졌습니다.  2010년에 부인과 사별한 후에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하여 회복을 못해 3월 23일에 서거했습니다. 그의 서거는 전 세계가 아쉬워 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가 남긴 유언은 감동 자체였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가 살던 집을 기념관으로 만들지 말라. 그 집을 헐어버리라.” 끝

목록


처음  이전  151 |  152 |  153 |  154 |  155 |  156 |  157 |  158 |  159 |  160  다음  맨끝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