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는 스페인 시대의 종식과 함께 멕시컨 시대를 맞이했다. 멕시컨 시대의 시작은 캐톨릭 미션들은 수난의 시대이기도 했다.
멕시컨 정부는 캘리포니아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캐톨릭 미션의 토지를 몰수하여 목장을 만들었으며 크고 작은 수 많은 목장의 주인들이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시대가 되었다.
교회가 아닌 목장 주들이 경제와 정치와 사회의 전반을 컨트롤 하기 시작했으며 캘리포니아를 낙농 세계로 만들어 버렸다. 수많은 외국 선박들과의 무역도 주로 목장 주들이 주도하며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최초로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미국인은 1816년, 토머스 Tomas W. Doak란 사람으로 상선을 타고 왔는데 몬테레이에 배를 대고는 카톨릭 신자가 되고 캘리포니아 여자와 결혼 했다.
1820년대의 캘리포니아는 공식적으로 외국 선박의 출입이 금지되었었다. 그렇다고 스페인의 상선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외국 상선의 출입을 눈감아 주었었다.
그 후, 1829년 보스톤 출신의 알프레드 로빈슨이란 상인이 캘리포니아 여인과 결혼하여 나머지 인생을 캘리포니아에서 살았는데 1846년 보스톤에서 ‘캘리포니아의 인생’이란 책을 발간하여 많은 미 동부지역의 시민들이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데 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한다.
그는 책을 통하여 캘리포니아 미션의 삶과 목장의 삶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빈약한 멕시컨 정부에 관한 글을 실었다. 그리고 그는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기후와 풍요로운 자원에 비해 어설픈 정치 체제를 꼬집으며 캘리포니아는 무언가 새로운 정치의 바람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이 글을 통하여 많은 미국인들이 캘리포니아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이는 훗날, 캘리포니아에서 미국의 입지를 굳힐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미션시대에는 가축들은 일정한 장소에서 도살이 되었지만 멕시코 시대의 새로 구성된 카우보이들은 어디서든지 마음대로 가축들을 도살 할 수가 있었다.
가을이 되면 목장 주들은 수 많은 도살 자들을 고용하여 수 백 마리의 소를 동시에 도살 하기도 했다. 목장 주들은 주로 인디언들을 고용하여 목장을 운영해 나갔는데 인디언 일꾼들은 이 목장 저 목장으로 팔려 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1832년에는 목축업이 가장 중요한 산업이 되었다. 캘리포니아에만 무려 150,000이상의 가축이 있었다고 한다.(1830년, 당시 캘리포니아에는 24000명의 순수한 백인 혈통의 스페인계가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캘리포니아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이동 수단으로서의 말이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캘리포니안들 은 특히, 말을 잘 다루었다고 한다.
그들은 말 등에 앉은 채 모든 일을 능숙하게 처리해 나갔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에 처음 온 사람들이 그들의 기마 술에 입을 다물지 못했는데 당시의 캘리포니안들 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1846년 미국인 신문기자인 에드윈 브라이언트는 캘리포니언들이 자기의 커다란 목장을 어떻게 관리하는 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 목장주 한 사람이 161Km의 거리를 하루만 에 돌아보기 위해20Km 마다 인디언 거주지를 만들었다. 그리고10필의 말을 20Km마다 배치하였다. 그는 1시간에 20Km를 달린 후에 다른 말로 갈아 타고 같은 속력으로 또 다른 20Km를 달렸다. 이런 식으로 목장 주는 하루8시간 동안에 자기 소유의 목장을 모두 둘러 볼 수가 있었다. -
또한, 목장 주들은 자신의 포도 농가에서 생산된 포도주를 비롯한 그 밖의 상품들을 외국 상선들 특히 미국 상선에 납품하기도 했다. 또 한 편으로는 유럽이나 미국산 가구나 의류 품 등을 구입하기도 했다.
목장 주 부인들은 유럽 산 의류들을 즐겨 입었는데 수 작업의 머리 빗이나 어깨걸이용 고급 망토와 목걸이, 귀걸이, 팔찌 같은 고급 액세서리, 혹은 구슬 달린 예쁜 구두를 선호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외국 상선에는 상품뿐만 아니라 우편 물이나 여행객들도 함께 탑승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