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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공화국의 탄생
Artchocolate | 조회 1,451 | 09.12.2023

오늘날 California 주 깃발에는 곰 그림과 함께 Republic California 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찍혀있다.



이는 캘리포니아가 미연방에 합류하기 전에 하나의 나라였음을 의미하는데 현재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Republic(공화국)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주는 바로 캘리포니아 주와 텍사스 주이다. 



이 주들은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이야기를 하면서 텍사스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어 오늘은 텍사스 이야기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Texas의 어원은 지붕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단어인 Tejas [떼하스]에서 파생되었는데 지붕처럼 높은 대지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때는 1821년, 중남미의 독립전쟁 당시, 영국과 미국은 중남미 국가의 독립 운동에 알게 모르게 많은 원조를 해 주었다. 



이유는 그들 남미 국가를 상대로 무역을 하려고 해도 스페인의 허락을 받아야 된다는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남미의 국가들이 독립만 한다면 스페인의 허락 없이도 마음대로 무역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스페인 제국은 몰락했고 중남미의 여러 식민지들이 독립을 하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오늘날의 미 서부 지역인 캘리포니아, 텍사스, 콜로라도, 네바다, 뉴멕시코, 이 지역들은 자연스레 멕시코 연방에 귀속 되었다. 



멕시코는 독립을 도와준 미국을 당연히 우방으로 생각했고 항구를 열어 미국인 누구던지 무역거래를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멕시코 영토내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하는 정책을 펼쳤다.


미국은 동부 지역의 13개 주를 시작으로 스페인으로부터 구입한 Florida [플로리다] 그리고 프랑스로부터 구입한 루이지애나 등으로 인해 오늘날의 중부 대륙까지 진출할 수가 있었다. 



당시의 미국인 인구의 대부분은 북유럽에서 이주해온 백인과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노예들로 구성이 되었는데 반해 멕시코는 약간의 백인과 혼혈인 메스티소들이 전부였다.



턱없이 모자란 인구와 골치 아픈 인디언들 때문에 멕시코 정부는 미국과 협정을 맺어 멕시코 법을 준수한다는 조건하에 자국 영토 개척을 미국인들에게 허락하였다.



 텍사스의 아버지라고 칭하는 스티븐 오스틴(Steven Ostin)이라는 중개인을 통해 대략 25,000명의 미국인들이 15년에 걸쳐서 텍사스로 이주하였는데, 당시 텍사스 인구의 90%에 해당되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멕시코 정부는 미국인 무법자들을 통제할 능력이 저하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멕시코 법에 금지된 그들의 노예 제도가 큰 이슈로 떠오르게 되면서 멕시코 정부는 골 머리를 앓게 되었다.



멕시코 정부가 대책을 강구할 즈음, 1835년 텍사스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은 주민 투표를 통해 텍사스 주를 멕시코 연방으로부터 탈퇴하여 미연방으로 합류 할 것을 가결하였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멕시코 협정 때문인지, 아니면 주위 강국들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텍사스를 받아드릴 만한 입장이 아님을 즉각 표명했다.


그러자, 스스로를 텍시안스(Texians)라고 부르는 미국 이민자 집단은 멕시코의 텍사스 주를 새로운 나라인 텍사스 공화국으로 탄생시켰다. 



이에 격분한 멕시코의 Santa Ana[산타아나] 대통령은 군대를 이끌고 텍사스로 진격하였다.



1836년 3월 6일, 미국계 반란군 187명이 Alamo[알라모] 요새에서 반기를 들고 끝까지 저항하자 산타 안나 대통령이 이끄는 멕시코 군은 열 이틀에 걸쳐서 포격을 퍼부은 후에 5천명의 병력을 투입해 미국인 전원을 사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Remember the Alamo!”[알라모를 기억하라!] 라는 구호와 함께 제임스 보위(James Bowie), 윌리엄 트레비스(William Travis), 데이빗 크로켓(David Crokett) 그리고 샘 휴스톤(Sam Houston)이 주동이 되어 텍사스 방위군을 결성하였다. 



그 해, 1836년 4월 21일 텍사스의 산하신토(San Jasinto)전투에서 Sam Houston[샘 휴스턴]장군이 이끄는 텍사스 방위군과 Santa Ana[산타아나] 장군이 이끄는 멕시코 군의 전면전이 일어났는데 이 전쟁에서 텍사스 방위군이 승리하고 적장 산타 안나 장군은 포로로 사로 잡히고 말았다. 



포로로 잡힌 산타아나는 벨라스코 조약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벨라스코 조약이란 리오 그란데를 국경선으로 하는 텍사스 공화국을 승인한다는 것이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텍사스는 독립을 선언하게 되어 텍사스 공화국이 탄생되었다. 



멕시코로부터 독립국가로 인정을 받은 후에 텍사스는 Sam Houston장군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사실상 이 전쟁은 미국과 멕시코의 1차 전쟁이나 다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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