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유럽에 처음으로 선보였던 고대부터 내려오던 아메리카 대륙의 농작물을 소개하는 네 번째 시간으로 옥수수에 대하여 알아 보기로 하자.
기원 전 3000년경부터, 멕시코의 시에라 마드레(Sierra Madre '어머니 산맥이라는 스페니시')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알맹이가 크고 영양가가 높은 식물을 얻기 위해 야생 식물을 재배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옥수수이다.
옥수수는 스페인어로 마이스(Maiz)라고 하는데, 하늘이 내린 곡물인 옥수수는 오랜 세월 동안 예술, 건축, 수학 그리고 천문학이 발달했던 마야나 아즈텍 등 중앙 아메리카 문명권의 주식이 되었었다.
마야 신화에 따르면, 신들은 인간을 옥수수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처음에는 진흙으로 인간을 만들었으나 비가 오자 곧바로 허물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두 번째로 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무 인간은 머리가 모자라고 몸에 피가 돌지 않는다는 결점이 있어서 산속으로 쫓겨 났는데 그들은 원숭이가 되었다고 전해지며,
세 번째로 옥수수 반죽으로 살을 만들고 옥수수 음료로 피를 만든 결과, 오늘날의 인간이 되었는데 마야 신들도 몹시 만족해 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하여튼, 옥수수란 곡물은 아즈텍과 마야시대 이전부터 대규모로 경작된 그들의 오랜 주식이었다.
멕시코의 남부 지역에서 마야의 선조들이 생산하던 옥수수는 요리하거나 가루로 만들어 먹었는데 기원 전1250년 과 1700 년 사이에 아메리카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1485-1547)를 비롯한 스페인 정복자들이 1519년 4월 22일 멕시코에 도착한 이후, 이들은 원주민(아즈텍 멕시코인)이 옥수수로 납작한 빵을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를 틀락스칼리(tlaxcalli)라고 불렀는데 반해 스페인 사람들이 이를 토르티야(Tortilla)라고 불렀다.
어원은 당시 스페인에서는 둥그런 형태의 카스텔라 빵인 토르타(Torta)에서 파생되었다. 이는 작고 둥근 빵이라는 뜻으로 오늘날까지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1520년 코르테스가 스페인의 스페인의 국왕, 찰스 5세에게 보낸 편지에는, 시장에서 사람들이 옥수수 또는 옥수수 빵를 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도시에는 많은 광장이 있으며, 광장에는 시장 그리고 물건을 사고 파는 장소가 있습니다.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은 6만 명 이상입니다.
시장에서는 이 세상에서 쓰고도 남을 만큼 모든 종류의 물건과 생활 필수품들이 거래되고 있습니다.
음식을 예로 들자면, 옥수수라는 곡식이 있는데 이 옥수수는 낟알로 거래되거나 또는 둥글고 납작한 빵의 형태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도시 내의 다른 섬과 육지 지역에서도 모두들 낟알로 된 옥수수리는 곡식를 좋아합니다.”
위의 그림은 1500년 초, 스페인 사람들이 처음으로 본 당시의 멕시코 시티의 모습인데 고산 지대를 사이에 펼쳐진 넓은 고원과 중앙에 섬이 있는 커다란 띠를 두른듯한 맑은 호수가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호수의 중앙에 도시를 건설하고 길을 딲고 교량을 만들었는데 그 곳이 바로 오늘날의 멕시코 시티 이다.
나중에 이곳에 도착한 스페인 사람들이 말하기를 “스페인의 마드리드만큼 크며 이탈리아의 베니스만큼이나 아름다웠다”고 감탄을 하였다 한다.
그림의 중앙에는 피라미드가 보이며 아즈텍 장사꾼들과 아낙네가 물건을 머리에 이고 계단을 오르는 모습은 우리네의 시골 아낙의 모습과 흡사하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주식이었던 옥수수는 15세기와 16세기 초에 처음으로 아메리카에 발을 들인 유럽인들에 의해서 유럽으로 전파된 후, 다시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전파되었다.
옥수수가 한 반도에 언제 도입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대략, 조선 중기,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으리라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그 이름도 중국 음의 위수수에서 유래하여 한자의 우리 식 발음인 옥수수가 되었고 다시 지방에 따라 강냉이, 강내미, 옥시기, 옥숙구 등으로 불려오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쌀, 밀과 함께 세계 3대 식량작물에 속하며 낱알은 쪄서 먹거나 빵으로 만들어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