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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전쟁 주역들의 결말
Artchocolate | 조회 1,138 | 12.26.2023

<캘리포니아 전쟁 주역들의 결말>


존 찰스 프레몬트 : 

그는 명령 불복종과 하극상이란 죄명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된 다음에 1848년 군대에서 전역하였다. 

그 후,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금광 사업으로 부자가 되었고 1년간 캘리포니아의 상원을 지내기도 했다. 

프레몬트는 노예 제도의 반대론자로 공화당 소속으로 입후보 하였다가 민주당의 제임스 버차넌(James Buchanan)에게 패하기도 했다. 

남북 전쟁 당시에는 북군에 가담하여 육군 소장까지 진급하였으나 에브라함 링컨 대통령과 잦은 불화가 있었으며 그는 당시에도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사령관으로 낙인이 찍혔다고 한다. 

남북 전쟁의 초기에 대통령의 승인도 있기 전에 미주리 주의 노예들을 해방시키는 바람에 대통령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는 남북 전쟁후에 아리조나주의 주지사를 지냈다. 


크리스트 키트 칼손 :

그의 이름은 서부시대의 전설로 남아서 삼류 소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서부 지역을 질주하며 수많은 인디언을 살육하는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멕시칸 전쟁이 끝난 후, 그는 한 때 목장 주인이 되기도 했지만 남북 전쟁이 발생하자 다시 군대로 복귀하였다. 

그 후, 그의 군인 생활의 대부분은 대륙의 남서부 지역에서 이루어졌으며 나바호 인디언을 상대로 하는 전쟁터였다. 

1864년, 아리조나와 뉴멕시코 지역의 나바호 인디언 8천명의 이송 작전을 지휘 하였다. 그 후 1868년 세상을 떠났다.


스테판 와츠 커니 해군 사령관 :

그는 1848년 프레몬트의 군사재판이 끝난 후에 멕시코의 베라쿠르스 지방에서 군정 장관으로 지냈다. 

그 후, 멕시코 시티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근무하다가 지병의 악화로 인해 1848년 10월 31일 네브라스카 주의 세인트 루이스로 이송되었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당시 정치 신입생이었던 에브라함 링컨은 제임스 포크 대통령의 멕시코와의 전쟁을 몹시 반대하였으며 그 전쟁을 가리켜 “미국이 아닌 미스터 포크의 전쟁”이라고 악평하면서 “미스터 포크는 거칠고 두서가 없으며 난잡한 사람”이라고 쏘아붙였다. 

에브라함 링컨은 일리노이스 투표에서 반대표를 행사했지만 흐름에 역행하는 쪽이라서 그의 정치 생명은 끝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당시, 미국민 그 누구도 에브라함 링컨이 나중에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제임스 포크 대통령 : 

그는 다크호스로 대통령이 된 인물이었다. 

그는 모든 미국인의 염원이었던 <Manifest Destiny>를 굳게 믿어 무력으로  미 영토 확장 정책을 추진한 인물이었다. 

그는 재임 기간 대부분을 전쟁에만 몰두하여 그의 선거공약이었던 태펑양까지의 미국 영토 확장을 완성하였다.  

오늘날, 일부 미국인들은 그를 진정한 미국의 영웅으로 추대하기도 한다.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안나(Antonio Lopez de Santa Ana) 멕시코 대통령

그는  텍사스에서 혁명이 일어난 해인 1836년에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텍사스로 북진하여 알라모(Alamo) 요새를 점령했으나 산하신토(San Jacinto) 전투에서 패함으로 텍사스를 잃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48년 12월 프랑스와의 베라크루스 전투에서 그의 다리를 잃었는데 그 다리만으로 장례를 치루면서 국민적 영웅으로 다시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 후, 그의 인기도가 하락하면서 멕시코에서 추방되어 쿠바로 망명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는 거기에서 비밀리에 미 정부와 타협하여 다시 정권에 복귀하게 되고 1853년 그는 멕시코 땅의 일부를 미국에 팔게되고 1855년을 마지막으로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존 어거스투스 셔터 :

그는 스위스 출신으로 셔터 요새를 ‘새로운 스위스’라는 이름으로 10여년을 운영하였다. 

그 동안에 수 많은 미국인 이민자들이 이 셔터 요새에 몸을 담으며 셔터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작은 왕국은 1848년 1월 24일 인근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몰락하고 말았다. 

황금에 눈이 먼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왕국으로 몰려 들면서 그의 요새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어디에다 하소연 할 때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요새는 멕시코 정부로부터 얻은 땅이었기 때문이다. 

멕시코가 항복하고 캘리포니아는 미국 땅이 되었지만 미국은 그의 왕국을 보호할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1852년 파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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