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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역사 – Sebastian Viscaino 이야기
Artchocolate | 조회 5,804 | 10.29.2015
 영국이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 지역 영토 주장을 하고 나서자 당시 뉴스페인 부왕이었던 Conde de Monterey는 캘리포니아를 주목하기 시작하였고 갈레온 무역상인Sebastian Viscaino[세바스챤 비스카이노]에게 알타 캘리포니아의 2차 탐험을 허락하였다.

 

당시에는 캘리포니아를 알타 캘리포니아 (위쪽 캘리포니아)와 바하 캘리포니아 (아래쪽 캘리포니아)로 나뉘어 불렸는데

 

 

알타 캘리포니아의 2차 탐사의 목적은 바로 Galleon무역의 안전한 항만 확보와 좀더 정교한 캘리포니아 지도 완성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2차 탐사에서 지어진 캘리포니아 해안가 이름들이 대부분 오늘날에도 사용되는 이름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면 오늘은 여러분과1602년도의 캘리포니아 해안가 여행을 함께 해 보기로 하자.

 

 

1602년11월 10일, 200명의 부하를 이끌고 아카풀코 항구를 출발한 Sebastian Viscaino[세바스챤 비스카이노]는San Diego[산디에고; 성자 디에고], santo Tomas[산토 토마스; 성자 토마스], Tres Reyes [트레스레예스; 세 명의 동방박사]라는 3대의 함선을 이끌고 알타 캘리포니아 탐험 길에 올랐다.

 

 

 무역상인 Sebastian Viscaino[세바스챤 비스카이노]는1602년 11월 12일, Juan Rodriguez Cabrillo[후안 로드리게스 카브리요]의 일지를 토대로 첫 번째로 도착한 항만의 이름을 San Diego de Alcala[샌디에고 데 알칼라]라고 지었는데 바로 오늘날의 샌디에고 시이다.

 

탐험대는 원주민인 팔라(PALA) 족의 환영을 받으며 그 곳에서10여 일을 머물렀다고 기록은 전한다.

 

11월 24일, 그들은 섬을 발견하고 산타 카탈리나라고 이름을 새로 짓고 그리고 11월 26일 카브리요가 지었던 Bahia de Humo(바이아 데 우모; 연기만)도 San Pedro(산페드로; 성자 베드로라는 스페인어)라고 다시 명명하였다.

 

그 11월 26일은 바로 성자 베드로의 날이었기 때문이라 한다.

 

비스카이노는 북쪽 해안을 따라 항해를 계속하면서 Santa Barbara, Point Conception, Santa Lucia 산맥, Carmel Bay, Carmel 강. 등의 이름들을 새로 지었으며

 

1602년12월 16일, 마침내 그들은 카브리요의 소나무 숲 항만을 발견하였고 이름을 Monterey (몬테레이)라고 새로 지었는데 이 이름은 당시 탐험을 허락해 준 스페인 부왕의 이름인 Conde de Monterey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북가주 해안을 따라 항해를 하며 Point Lobos[늑대들이라는 스페인어]지점, Carmel Valley[당시 골짜기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의 이름이 카멜이었다], Sierra Point[산맥이라는 스페인어]지점, Coyote Point[코요테; ‘이리’라는 스페인어]지점 그리고 지금의 Columbia River 지역을 탐험하고는 Farallon Islands[파라욘 섬], Point Reyes[왕들의 만] 그리고 Rio Sebastian [세바스티안 강; 오늘날의 러시안 강]등의 이름을 지었다.

이같이 오늘날에도 사용되는 이름들을 새로 만들어 가며 캘리포니아 섬의 정교한 서쪽 해안 지도를 완성하였다.

그의 소중한 캘리포니아 해안 탐험 기록은 167년 후인 미션 시대(Mission Period)에 몬테레이(Monterey)가 목적지가 되어 출발한 정착민들의 해안 내륙 탐험의 기초가 되었음은 물론

훗날, 몬테레이가 캘리포니아의 주도가 된 18세기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돌아오는 대부분의 Galleon 선박들이 일차적으로 정박하는 항만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Sebastian Viscaino[세바스챤 비스카이노]가 2번째 알타리포니아 탐험을 마치고 1603년, 멕시코로 돌아왔을 때 뉴스페인 부왕의 자리엔 새로운 인물이 등극하여 있었는데

그 새로운 부왕은 캘리포니아의 항구 건설에는 관심조차 없었고 오히려 1606년에는 캘리포니아 개척 금지 조치를 발표하는 바람에 그 후, 160여년 동안 캘리포니아는 유럽인들에게 완전히 잊혀진 섬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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